네모난 세상
네모난 세상
  •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 승인 2023.11.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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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談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며칠 전 저녁을 먹으러 가족과 식당에 갔다. 옆 테이블에도 한 가족으로 보이는 분들이 앉아 고기를 굽고 있었다. 3세대로 보이는 가족에게는 이제 막 첫 생일을 지냈을 것으로 보이는 아기가 아기 의자에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아기 의자 앞에는 영락없이 태블릿이 놓여 있었고, 어른들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내내 아기의 시선은 태블릿에 고정되어 떠나지 않았다. 덕분에 어른들은 아기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편안히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필자가 아이 키울 때를 돌이켜 보니 편안히 식사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통제하면서, 보채지 않도록 달래가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실감하곤 했으니 말이다. 
기억의 파노라마를 지나며 그날 저녁 나의 시선은 자꾸 옆 테이블의 아기에게로 향했다. 식사 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지만 아기는 여전히 태블릿 앞에서 네모난 작은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1위로 국민의 98%가 사용하고 있으며 영유아의 30% 이상이 24개월 이전에 스마트 기기에 노출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물론 우리 일상에서 이미 온라인 매체의 활용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많은 부분을 차지하여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주고 놀라운 가능성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위험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 24개월 미만 영아기의 미디어 노출은 뇌 발달을 저해하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틱장애, 발달 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아기들이 오랜 시간 미디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집중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인 착각인 셈이다. 
식당뿐만 아니라 길을 걸어가면서도 시선은 휴대폰에 고정되어 주변 상황을 전혀 살피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흔히 보게 되며 가끔은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올 정도로 아찔한 상황을 목격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디지털미디어 과사용’은 수면 방해, 뇌기능 저하 등 신체적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우울, 불안, 자존감 저하 등의 다양한 심리적 변화도 경험하게 되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통의 부재로 인한 관계 맺음의 어려움과 일탈적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범죄 노출 위험을 높이고, 실제 범죄 피해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미디어를 활용한 아이 돌봄이나 교육은 성인들이 활용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아이들을 미디어 세상에 맡긴 채 성인들의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에서도 다양한 매체의 활용은 교육의 효과나 집중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고 있으니 모든 미디어 활용이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디어의 긍정적 활용 방안은 높이되, 적정 기준을 준수하고 적정 시간을 유지·관리하며 부정적 노출과 그로 인한 사회 문제를 얼마나, 어떻게 예방하느냐는 굉장히 주요한 문제이다. 지금은 터져 나오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한 채 따라가기 바쁜 실정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많은 수고로움과 정성과 사랑, 관심이 더해져야만 가능하다. 더 많은 시간과 애씀을 기울여야 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성찰하고 표현하도록 도와야 한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책임 있는 어른들이 최선을 다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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