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뿌리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10.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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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의 매봉산 둘레는 사방이 마을이라 마을에서 매봉산을 오르는 길이 뿌리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다. 하여 매봉산을 아담한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하고 싶다.

정상에 오르면 운동 기구도, 물도, 벤치도 있다. 커다란 나무는 새들과 곤충들의 보금자리이듯이 인간도 새들처럼 그늘에서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를 찾아 날마다 동이 트면 해 질 녘까지 비탈 산을 본인 편리한 데로 경쟁하듯 마구잡이로 만들어 좁은 비탈길이 사방으로 나 있다. 경쟁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도전이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어는 곳은 뿌리가 등산화 발길에 밟혀 땅 위로 덩그러니 드러나 수난을 겪는다.

땅에 놓였으니 뿌리라 하지 나뭇가지인지 뿌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겉껍질이 벗겨졌을뿐더러 군살까지 박혀 삭정이처럼 보인다. 비가 오면 물의 힘을 이기지 못한 흙이 떠내려가 깊은 골이 생겨 흙의 보호를 받아야 할 뿌리가 도리어 흙을 붙잡고 있다.

나무는 뿌리가 생명의 근원인데 바깥층 세포가 벗겨져 물관이 손상되었으니 뿌리 구실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흉물스럽게 변한 뿌리를 볼 적마다 우리 집 여러 종의 정원수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들이 목말라할세라, 태양 빛이 가릴세라, 벌레에게 물리면 가려울세라 돌보는데 바라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가엽다.

삭정이처럼 보이는 뿌리를 따라 몸체를 올려다보니 세월의 깊이를 간직해 우람한 몸에 솔방울과 잎을 품은 소나무다. 뿌리로부터 충분한 영양분을 전달받지 못해서인지 삶을 다한 잎을 덕지덕지 무겁게 달고 있다. 영양이 부족해 애써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얼마 전 보고 온 바닷가 푸른 해송이 아른거린다. 그들은 물을 충분히 공급받아 잎이 실팍할뿐더러 초록빛이 강했다.

매봉산 나무는 인간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게 분명하다. 애잔해 나무를 보듬으며 `매봉산 지킴이로 사느라 고생이 많구나' 인사하고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산책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지인이 반색하며 반긴다. 그러고는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자기의 걸음걸이를 보여주며 이렇게 딱딱한 뿌리를 발에 힘을 주어 꼭꼭 밟으며 산을 오르란다. 발에 지압이 되어 운동의 효과가 배나 된다고. 지인이 시키는 대로 군살이 박힌 뿌리를 밟느라 요리조리 도리질하며 따라 걸었다. 따라 걷다 생각하니 뿌리가 아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촉촉한 흙 한 줌 없는 비탈길에 덩그러니 드러나 매일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수난을 겪는 뿌리를 향해 “내 욕심이 너무 과했지?”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가 좋아 산을 오를 때마다 이런 이기적인 행동을 너 나 없이 한다면 이들이 살아날까.

이 나무가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면 `받을 줄만 아는 이기적인 인생아, 너희도 우리의 부족한 부분 한가지 정도는 채워줘야지. 할 것 같다. 생각 없이 뿌리를 혹사한 행동이 부끄러워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

어제 했던 행동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뿌리를 피해 가며 걷는데 뿌리가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뿌리를 보호해 주는 생명의 터전인 흙도 낙엽도 없이 한겨울 매섭게 부는 칼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야 하고, 태양 빛에 달구어진 바위를 알몸으로 감싸 안고 걷힌 호흡을 하며 살아가는 저들이 놀랍고도 대견해 '삶이 녹녹지 않지? 그게 삶이란다. `너나 나나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서 각자의 삶을 체선을 다해 살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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