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 언니
영수 언니
  • 연서진 시인
  • 승인 2023.10.0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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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시인
연서진 시인

 

“문고리에 걸었으니까 수술할 때까지 잘 먹어. 또 줄게.”

“아끼지 말고 다 먹어.”

영수 언니의 전화를 받고 현관문을 여니 묵직하게 매달린 비닐봉지가 있다.

언니는 언제 간 건지 보이지 않는다. 풀어 보니 두툼한 장어와 양념이 들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한 시간 넘게 운전하고 왔을 언니를 생각하니 뭉클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사람과의 관계는 사물과 관계된다는 뜻의 인할 인(因) 연분 연(緣)을 쓴다.

불교의 뜻으로 풀어 보면 인(因)은 직접적인 결과의 힘이고, 연이(緣)은 그를 돕는 간접적 힘이라 한다. 예를 들어 씨앗이 인(因)이라 하면 땅과 물, 햇빛과 바람이 연(緣)이 되어 꽃을 만든 것이라 말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좋은 인연을 맺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게 만만한 사람,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게 언니는 그렇게 인연(因緣)으로 다가왔다.

늘 그랬다. 수술한 뒤에도 닭백숙이, 모락모락 갓 지은 뜨끈한 찰밥과 채소 듬뿍 고깃국이, 언젠가 맛있다고 했던 자두까지 수시로 먹을 것이 문에 걸렸다. 봉지만 걸어 놓고 가는 언니가 야속하면서 그 다정함에 눈물 난다.

어떤 이는 오지랖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배려와 양보, 희생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언니는 상대가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배려라는 이름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관계는 일상의 연속이다. 줄다리기로 힘들어하기보다 내가 편한 사람이 되어야 좋은 관계가 형성되고 인연이 되는 것 같다.

언니의 관심과 배려엔 적당하게 따스한 온도가 담겨있다.

난처한 상황을 알게 되면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보려 애쓰는 언니를 보면 때론 형제보다 더 의지가 된다. 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건 그는 그만큼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하나 보다.

“내가 도망가면 어쩌려고 이체하지 않고 차용증도 없는 거야?”

언젠가 조건 없는 돈을 빌려주었을 때 물었더니 도망가도 잘 살면 된다는 언니의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게 늘 연(緣)이 되어 준다.

늘 받기만 해 미안하다는 나에게 준 건 없지만 받았다는 생각 들면 너도 누군가에게 주면 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남을 위해 살아야 행복하다. 양보와 배려를 하면 내가 떳떳해진다'라는 어느 종교인의 글을 읽은 적 있다.

내가 떳떳하기 위함의 배려와 양보라는 글쓴이의 말에 언니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떳떳하기 위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점차 언니를 알아가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공감할 수 있었다.

꽃을 피우는 사람이었다. 꽃을 피우고 싶은데 잎이 꽉 잡고 놔주지 않는다면 슬픈 일이다. 배려와 양보를 실천하는 사람은 꽃을 붙잡고 있는 잎을 어루만져 주는 사람들이다.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은 사람, 어깨를 내어주고 기댈 수 있는 사람, 말없이 안아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나도 언니에게 좋은 인연(因緣)이 되고 싶다.

한겨울 동파에 수도꼭지의 물을 틀어 놓는 것처럼, 사람의 감정도 따뜻할 때 흘려야 고장이 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따뜻할 때 보내야 하겠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드는 가을바람에 서늘함이 묻어 있다. 어쩌면 가을 냄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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