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
민들레꽃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3.05.3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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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여기가 인문학 강의실인가요?”

라고 물으며 들어왔다. 나는 재빠르게 “네”라고 대답했다. 마음이 놓이시는지 맨 앞 책상부터 창가 맨 뒤쪽 자리까지 두리번거렸다. 뭔가를 찾는 듯하더니, 전기 콘센트에 어떤 상자와 연결된 전기선을 꼽는다. 산소 공급기였다. 바로 옆 책상에 앉아 콧줄을 떼어 낸 다음 내게 미소를 지었다. 노크도 없이 들어오신 이유를 알게 되었고, 순간 당황했다.

콧줄까지 끼우고 강의를 들으려 여기까지 왔을까? 검붉은 얼굴을 보니 분명 환자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집에서 몸조리하시지, 문학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힘들게 오셨나? 대부분 사람이 멋쩍은지 놀랍다는 반응이다.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보다도 강의에 집중했다.

한두 달이 지나갔다.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한낮 기온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안내 자료를 배포하기 위해 강의실에 갔다.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는 노트가 그대로 있었다. 놓고 갔나 보다. 나는 노트에 쓰인 한 편의 시詩를 훔쳐 읽었다.



민들레꽃



친구가 우산도 없이

학교에 간다.

민들레꽃이 친구가 되었다.

노란 우산이 활짝 피었다.



하늘 높이 맑고 깨끗한 물결처럼 느껴졌다. 내면의 호흡인 동시에 미래를 향한 시선이었다. 들에도 산에도, 길모퉁이 틈 사이에도 민들레꽃이 핀다. 어쩌면 여리고 가냘프게 보이지만 수백 개의 혀꽃으로 자유로운 생명력을 갖는다. 신의 영역에 벗어나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아름답게 사랑을 내어주는 것 같다. 노인의 시詩가 그러한 듯하다.

바람과 시간에 따라 주어진 운명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리와 가슴, 오성悟性, 감성 그리고 긴 호흡으로 생명력을 갖는다. 나는 시인詩人에게 한없이 흐를 수 있는 삶을 보았다. 그것은 끈기가 아닐까 싶다. 시인은 간이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의 삶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어디선가 또다시 생명의 시를 낳을 것이다.

도대체 문학이란 무엇인가? 새삼 반문해 본다. 시인의 삶에서 진정성을 본다. 길가에 이름 없는 풀을 밟지 않는 일이나, 아름다운 꽃을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민들레꽃처럼 누군가에게 우산이 되어 주었다. 볼품이 없는 나는 툭하면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었다. 부족한 능력이나 시간 탓만 했다. 그런 내가 선한 삶의 정서를 배우게 되었다. 그때부터 문학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고 삶의 변화가 생겼다.

프랑스 시인 생존 페르스는 `인문학은 삶의 가치를 향상하게 시키기 위해 배운다.'라고 말했다. 이제부터 소망하는 것을 위해 힘을 끌어모아야겠다. 아름다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별에서 시작된다. 봄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또 헤어지곤 한다. 그리고 사랑하기도 하고 이별도 한다. 진실을 놓고 고통스럽게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싸우더라도 서로가 보듬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의 가치는 이별을 사랑할 때 빛난다.

우리는, 한 해 한 살을 먹고 해마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서 겨울을 기다린다. 그렇게 인생은 반복된 원을 그리듯 원점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반복된 하루를 시작한다. 시인은 삶의 한계를 뒤흔드는 일에 마지막 혼과 정성을 쏟았다. 아마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시인의 힘이겠다.

민들레꽃처럼 살아가는 시인을 동경한다. 산소 공급기를 몸에 달고 위태롭게 외줄을 타는 심장과 가슴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던 걸까? 아마도 따뜻함을 같이 하고 함께 실천하는 실존적 삶이 있었으리라. 바로 민들레 사랑이다. 끊임없이 내면의 나를 사랑하는 일이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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