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더 중요해요
생명이 더 중요해요
  •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3.05.21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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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세상엔 수많은 슬픔이 존재한다. 어떤 슬픔도 경중을 가릴 수 없으며, 같은 일이라 하여도 너와 내가 느끼는 슬픔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의 가슴을 안타깝게 하는 슬픔이 있다.

바로 `참척(慘慽)'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슬픔이다. 부모의 차량을 보고 반가워서 뛰어들었다가 별이 된 아이, 공사장에서 굴러 떨어진 적재물에 치여 별이 된 아이 등등 사연을 듣다 보면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절로 가슴을 치게 된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가버린 아이들의 원통함은 어찌하며, 남은 이들이 그 뒤를 따르기 전까지 지고 가야 할 고통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돌이킬 수 없는 비통한 일에 모두가 조용히 애도할 뿐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독 더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하는 죽음이 있다. 바로 학교폭력을 견디고 견디다 한계에 부딪혀 자기 생을 놓아버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맞이하는 죽음이다. 아이의 몸이 차갑게 식은 후에야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부모가 목청이 찢어져라, 아이의 이름을 외친들 돌이킬 수 없고, 가해자가 특정되어 다행히 합당한 벌을 받는다 해도 아이를 향한 죄책감이나 아이의 빈자리는 그 누구도 채울 수도 씻을 수도 없다.

얼마 전 학교폭력으로 아이를 잃은 한 어머니가 TV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학교 그만두어도 괜찮아요. 생명이 더 중요해요.”

어쩌면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글자 하나하나에 그녀의 피눈물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현재까지도 학교폭력으로 지옥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또 다른 피해자에게 저 말을 전하면서, 자신의 아이에게는 말해주지 못한 후회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 것일까. 차마 헤아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렇게 슬픔의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그때는 어렸어요.” “잘 기억이 안 나요.” “지금에 와서 어쩌라는 거예요.” “피해자 학생이 당하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등등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게 하는 가해자들의 잡소리가 시작된 것이다. 단전에서부터 피어오른 분노의 열기가 정수리를 통과해 하늘까지 닿을 것만 같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서너 살 아이들에게도 부모들은 “친구를 놀리면 안 돼.” “친구를 때리면 안 돼.”를 가르친다. 도대체 서너 살보다 얼마나 더 어렸으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폭력을 행사하고도 어리다는 핑계가 나오는 것일까. 인제 와서 사과하면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그 어떤 것들이 무너질까 봐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진실을 스스로 속여가며 사는 건 부끄럽지 않은 것일까. 정말 그들의 행보 하나하나에 다 화가 나지만 더 어이가 없는 건, 마치 그들을 지원하기라도 하듯이 피해자들이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내고 사과를 받으려고 할 때마다 그 앞을 가로막는 정책과 제도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한 여성을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학창 시절 내내 끔찍하게 학교폭력을 당했다며 본인을 `생존자'라고 일컬은 그녀는 현재 가해자들에게 너무도 유리하게 되어있는 법 제도의 개선을 위해 자신을 내놓고 있다. 그녀의 애씀이 빛을 발해 수많은 생존자에게 하나의 희망으로 남을 수 있다면 무엇보다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 또한 앞서 말한 엄마의 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생명이 더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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