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
부활의 의미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28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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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한 채 화 < 문학평론가 >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죽음은 탄생이 전제되어 있다. 죽음과 탄생은 결국 순환적인 고리와 같다. 또한 죽은 자가 부활하는 까닭은 살아 있는 동안에 해야 할 일을 모두 수행하지 못하고 죽어서 그 일을 마저 수행하기 위해서 부활한다. 예수의 부활은 인류에게 사랑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 심청의 부활은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함은 물론, 효의 전형적 인물은 신마저 감동시킨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했다.

김남일의 주목할 만한 소설 '오생의 부활'('창작과 비평', 여름호)은 그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오생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다만 죽음보다는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독자들의 독서도 여기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물의 배후에 와습(항간에 와습이'訛',즉 '물 흐리는 미꾸라지'라거나, 혹은 WASP, 즉 앵글로쌕슨AS계, 백인W, 프로테스탄트P를 가리킨다거니 하는 설들이 있으나, 오생학파에 따르면, 와습은 늘 와습 이상이다.)이 있다고 주장하던 오생은 부활하였다. 이 비현실적인 사건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기본 전제인 셈이다.

오생은 소설을 쓰기도 한다. 학문에 매달려 진리를 궁구하는 열정만큼은 부활 이전이나 여일하였다는 점으로 보아 합리성을 미덕으로 여기는 학인(學人)이었다. 다만 부활 이전과 차이점은 진실을 폭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두가 근시안적 이익에 눈이 멀어 외면하기에 오생의 언행은 오히려 전경화(前景化)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오생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며 국가보안법, 민제동맹법까지 어겨 남도의 배소에서 세월을 썩은 전과자 '주제'라며 냉소적으로(cynical) 표현한다.

오생이 부활하여 화두로 꺼낸 말은 신자유주의이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뭐든지 집어삼키는 괴물이며, 완전한 자유경쟁이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서술자의 시선이 여기에서 속도를 늦추는 점으로 보아 서술자의 역사적 인식(historical sense)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생은 제국의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당당히 맞서지 못하면 민국의 민생은 모래로 쌓은 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폭로하려고 애쓴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오생은 라면의 수프에 특별히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라면에서 사라진 수프는 가까운 미래에 소리 소문도 없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 모든 것들의 제유인 셈이다. 더욱 염려하는 것은 세인들이 더듬이도 없이 태어난 곤충처럼 아무런 위기감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라면에 수프가 없어졌는지 또는 수프가 없어도 길들여진 라면에 이끌려 라면을 먹으면서 얼마든지 행복한 세인들의 모습에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다.

오생이 화를 내는 데에는 당이 외면하고 있는 부분 때문이기도 하다. 현생인류의 식생활 자체를 위협할지도 모를 이 문제를 당이 외면하고 있다는 데에 화가 난다. 그러면서 아는 것만으로 그치고 행동하지 않는 창백한 지식인들을 향해 아는 바를 행동하도록 종용한다. 당과 조합과 연대가 외면해도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비정한 거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과 조합과 연대는 정치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애쓰는 단체들이다.

오생은 도덕적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지대를 지나서 자연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야만적 노동 착취를 생각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국제 결혼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약탈혼이 버젓이 용인되는 민국, 농촌을 죽여서 도시를 살리는 민국의 기본 아젠다가 바뀌기를 꿈꾼다. 신자유주의라는 미명 아래에 자행될 이러한 폭력을 인식시키고 이를 극복할 행동화를 위하여 오생은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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