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4월은 잔인한 달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3.04.10 1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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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4월이다. 봄이 기지개를 켜고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간이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예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꽃 천지요, 연둣빛으로 가득하다. 겨울을 이겨낸 생명이 움트고 꿈틀대며 새 자리를 만드느라 분주한 계절이 4월이기도 하다.

그런 4월을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시 `황무지'에서 세계인들에게 잔인한 달로 각인시켰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으로 뒤섞여/ 잠든 뿌리가 봄비에 뒤척이는데' 첫 행부터 강렬하게 치고 들어오는 시는 때론 극단적인 희망으로, 때론 극단적인 절망으로도 읽힌다.

시인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라고 했다지만, 만물의 잠을 깨우는 4월은 새봄을 맞는 어린 생명들에게 잔인하게 다가오는 생존의 또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4월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잔인한 달이다. 지워내지 못한, 지워낼 수 없는 304명의 생명이 속절없이 떠난 달이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9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들의 기억 속엔 바다 한가운데 떠 침몰 중이다. 세상을 향해 이제 막 꽃을 피우려던 학생들이 수학여행길에 올랐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날, 그 어느 날처럼 출근하다가 긴급 속보로 전해진 뉴스는 거짓말 같은 현장이었다.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들을 태운 배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장면을 텔레비전 중계로 지켜봤던 국민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기우뚱 배가 기울었지만 모두 안전하게 구조될 거라고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사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아이들. 눈앞에서 사라진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진 대형 선박 세월호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바다라는 공간에 묶여 지켜만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는 안전에 대한 불안이 집단 공포로 커가는 경험을 해야 했고 안전을 빌미로 만든 사회 제약들은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로 변질되며 공감하는 사회와 멀어지는 요인이 되었다.

그렇게 아물지 못한 세월호는 그날을 목도한 사람들은 물론 이 땅에 살아갈 후손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리고 다시 아홉 번째의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9년 동안 세월호 참사는 책임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추모 사업도 반쪽으로 끝난 채 답보상태에 있다. 진상 규명에 우물쭈물하는 사이 팽목항에서, 시청 앞에서 벌어진 비인간적인 행태들은 열거조차 부끄럽다. 치유받고 아물어야 할 상처는 더 큰 흉터로 남아 잔인한 4월을 건넨다.

지난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10·29 참사는 세월호의 또 다른 이름이다. 159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길을 걷다 목숨을 잃은 국가적 대참사임에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미봉책으로 끝내려는 태도야말로 국민의 분노만 키울 뿐이다. 자식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게 남은 생은 지옥이다. 그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발벗고 나서야 하는 것도 국가와 사회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다.

톰 필립스가 쓴 `인간의 흑역사'를 보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말한다. 인류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아무리 많은 난관을 극복해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방향키이기도 하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할 인간의 흑역사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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