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남한산성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1.07.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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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유난히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시대 탓인지 짧은 한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소설 남한산성의 한 구절이 가슴에 꽂힌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지존은 다르지 않았다.”

삼복더위의 대지는 바라보고만 있어도 뜨겁다. 햇볕이 금방 대장간에서 달군 쇠붙이 같다. 코로나19로 각자의 성에 갇혀 그저 견디며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릴 뿐이다. 도대체 잠잠해지는 시간이 오기는 할 것 인가 막막하다. 타들어가는 대지를 바라보며 먼 병자년 겨울 남한산성에 갇혀 있던 조선의 시간을 생각한다. 추위는 악을 쓰고 달려들고 독에 쌀은 떨어지고 성 밖에는 오랑캐들이 지키고 있으니 나갈 수도 없고 그냥 앉아서 죽을 수도 없고, 지금 우리가 그 형국 같다.

남의 일 같았던 일이 내 가까이에 왔다. 코로나19 확진 자와 밀접 접촉자가 되었다. 그날로 우리도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음성이지만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단다. 아침저녁으로 자가 진단하라는 연락이 오고 대문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면 안 되고. 남편과 한집에 있지만, 밥은 따로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따로, 같이 있지만 각자 생활을 해야 한다. 느닷없이 갇혔으니 생각보다 불편함이 크다.

백신 1차 접종은 했으므로 걱정은 덜 하지만 그래도 모르니 철저하게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탓이다. 먼 병자년에 임금이 신하들과 군사를 거느리고 남한산성까지 걸어가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설마, 나는 괜찮겠지 하면서 느슨하게 살았다. 안일하게 생활했던 죄로 나는 신축년 7월 남한산성에 있다. 내 가까운 지인은 백신이라도 맞을 수 있는 사람들은 괜찮은 거란다. 당신 부부는 지병으로 백신도 맞을 형편이 아니란다. 유일하게 즐기던 것이 가끔 차를 타고 나가 맛있는 밥을 사먹었는데 그마저도 못하고 있단다.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며 전화선 너머로 흐느낀다. 산다는 게 무엇일까. 건강한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 그러지 못한 사람에게는 울 일이다. 이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코로나시대를 살면서 절절하게 실감한다.

청나라를 향해 엎드려 절하는 임금은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성문을 나왔다. 치욕은 견딜 수 있지만 죽음은 견딜 수 없는 거라는 신하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 그것만이 백성을 살리는 길이니 그 치욕을 참을 수밖에 없었겠다. 치욕은 살아서 벗어날 수 있지만 죽음은 끝인 것이다. 고통의 끝에 삶의 문이 열린다. 절망과 희망이 몇 번씩 교차하면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치욕과 삶을 선택해야 할 지존이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를 피해 각자의 성에 고립되어 있다. 문정희 시인의 눈부신 고립, 사랑하는 청춘들은 둘만의 황홀한 고립, 고립이라는 단어에는 눈부심도 있고 황홀함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고통과 외로움의 고립으로 숨이 막힌다.

제한된 공간에서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진통을 겪지 않고 어찌 영광을 말하리오. 이 더위가 누그러지는 날 신축년 남한산성의 성문이 열리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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