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두 여자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8.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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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그녀가 떠났다. 그리도 단단할 것 같은 섬을 두고 상상의 성을 짓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구순을 바라보는 그녀에게도 젊은 날에는 화려한 순간이 있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곳은 많은 사람이 인삼밭을 경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인삼밭 일을 주업으로 삼았다. 친정 부모님 역시 젊은 시절부터 늙어서까지 인삼밭 일로 잔뼈가 굵으신 분들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인삼밭에 가면 어머니와 남남이 되셨다. 곱상한 외모에 말수가 적은 분인데 여인들에게는 `샌님'이라는 별칭까지 따라붙을 만큼 인기가 좋았다. 그 `샌님'과 늘 짝을 이룬 여인은 바로 그녀였다. 하얀 피부에 늘씬한 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새댁시절부터 허랑한 남편 덕에 갖은 고생을 한 탓일까? 아버지보다 다섯 살이 어린데도 주름투성이에 까무잡잡한 얼굴은 열 살은 더 들어 보였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다니는 것을 불편해하셨다. 어머니가 그녀를 곱게 볼리 만무하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모르셨을 것이다. 옛 여인들은 칠거지악 중에도 제일 큰 죄는 아들을 못 낳는 것이었다. 딸 하나만을 낳은 그녀는 남편이 시앗을 보아도 할 소리가 없었다. 결국엔 읍내 변두리에 이백 평 남짓한 땅에 집 한 채 지어주고 남편은 그곳으로 그녀를 내몰았다. 그녀는 그렇게 외로운 섬이 되어버린 곳에서 딸과 함께 살아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는 아마도 기대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가 생각하는 만큼 좋은 사내는 아니었다. 어머니가 남편에게 지청구하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그녀 또한 몰랐을 테니 말이다.

멋이라곤 부릴 줄도 모르는 어머니에 비하면 아버지는 멋쟁이셨다. 읍내 장에라도 가실 때면 중절모에 양복을 입고, 구두까지 신으셨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게 자신은 철두철미하게 가꾸신 분이다. 거기다 성마른 성격의 소유자였으니, 부부동반으로 장에 나가는 일은 만무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 집에 다니러 온 어머니가 그녀와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다. 우리가 이사 온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 풀이라도 뽑아 줄 양으로 쪼그려 앉으려는 순간, 앞집과 경계로 쌓아둔 돌담 너머로 낯이 익은 여인네가 서 있었다.

먼저 고개를 돌려버린 것은 어머니였다. 그때 어머니의 표정이 얼마나 무섭고, 슬퍼 보였는지 모른다. 한 번도 살갑게 대해준 적이 없는 남편이 다른 여인들에게는 한없이 좋은 사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어머니는 그녀를 무척이나 사갈시했다.

하지만 그녀도 어머니도 삶은 사방연속무늬였다. 삶의 고비마다 간단없이 이어지는 고난 앞에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에게 둘째 아들은 남편 그 이상이었다. 그런 작은아들이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벌레가 살기 시작했다.

우리 앞집의 그녀가 자신 전부였던 딸을 잃은 것은 그보다 몇 년 후였다. 그녀가 이상 행동을 보인 것도 그 무렵이었다. 봄이 다 가고, 여름이 되었는데도 그녀는 두꺼운 털옷을 벗지 못했다.

머릿속에 살던 벌레가 며느리를, 남편을, 딸을, 마침내는 아들에 대한 모든 기억까지 다 갉아먹어 치웠다. 그러자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는 오래전 작은아들의 곁으로 집을 옮기셨다. 그녀 또한 몇 년 전 딸의 곁으로 먼 길을 떠났다. 어느덧 아버지가 삼밭 일을 할 때면 분신이 되었던 쇠스랑은 친정집 외양간 외벽에 걸려 세월의 더께를 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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