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연가 5
탁구 연가 5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9.2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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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게 아냐/ 네가 없으면 나도 없고/ 네가 시들하면 나도 시들해져/ 이겨서 나쁠 건 없지만/ 졌다고 슬플 것도 없어/ 내일 다시 태양은 뜨고/ 기회는 잡으라고 있는 것/ 때론 지는 게 이기는/ 반전의 미학도 있지/ 최고가 되려고/ 욕심내는 게 아냐/ 뭇별과 어울리기 위해/ 내공을 쌓는 거야/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함께해서 재미있고/ 어울려서 행복한 삶/ 달인이 별거더냐/ 그리 살면 달인이지’ 
‘탁구를 치며 9’입니다.
탁구는 상생 운동입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네가 살아야 나도 사는. 탁구는 상호작용 운동입니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고 네가 시들면 나도 시들해지는. 연인들과 화초들이 그러하듯이 탁구도 잠시 한눈을 팔거나 소홀히 대하면 생채기가 납니다.
무릇 탁구 치듯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듯 탁구공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리 살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내공이 붙고 쌓여 생활의 달인이 되고 즐탁의 달인이 됩니다. 행복의 문은 탁구공 주고받듯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는 이에게 열립니다. 아니 행복이 그의 것입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게임을 하다 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엘리트선수는 승패에 따라 존재가치가 매겨지지만 즐탁인은 자족하면 되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이기기 위해 즐탁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재미를 위해, 뭇별과 어울리기 위해 즐탁하는 까닭입니다.
살다 보면, 지나고 보면 지는 게 이기는 반전의 미학도 있거니와 최고가 되려고 입문한 것도 아니니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즐탁할 수 있음에 자족하고 함께한 인연에 감사해야 합니다. 고수와 달인이 별겁니까? 그리 사는 이가 고수고 달인이지요.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크고 작은 실수를 하듯/ 그 예쁜 연인에게도/ 때론 몹쓸 실수를 하지/ 무심코 치고받다가/ 깨뜨리기도 하고/ 급하게 서두르다가/ 짓밟기도 하는 비련/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제 몸 으스러지도록 사랑한/ 순애보여 맑은 영혼이여/ 무소유의 짝사랑도/ 깊어지면 응어리가 되는/ 푸른 사랑의 이중주/ 둘 또는 넷이서/ 온몸으로 열창하는/ 저 가없는 돌림노래‘
‘탁구를 치며 10’입니다.
완전한 인간 없듯 완전한 탁구인도 없습니다. 다들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며 성장하고 그런 실수를 통해 성숙해지지요.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과 친구들에게 정제되지 않은 말과 행위로 아물지 않는 상처를 주고 두고두고 후회하듯이.
탁구도 그래요. 본의 아니게 그 예쁜 탁구공을 깨트리기도 하고 짓밟기도 하는 실수와 무례를 범하기도 하거든요. 제 몸 으스러지도록 사랑한 순애보인데, 맑디맑은 영혼인데, 무소유의 순정한 짝사랑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탁구는 녹색테이블을 마주하고 두 사람(단식) 또는 네 사람(복식)이 부르는 푸른 사랑의 이중주입니다. 탁구공 하나를 짝사랑하듯 주고받는 돌림노래입니다. 오는 공 놓칠세라, 보내는 공 네트에 걸릴세라, 치는 공 테이블 밖으로 튕겨나갈세라 노심초사하면서.
그렇게 신열을 앓아가며 온몸으로 열창하는 저 가없는 돌림노래가 바로 탁구이고 인생살이입니다. 작고 가냘프기 그지없지만 즐탁인을 위해 기꺼이 뭇매를 맞는 탁구공. 돌리고 깎고 후려치고 내동댕이쳐도 심지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한마디 원망도 않는 탁구공. 그 탁구공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하며 ‘탁구 연가’를 마칩니다.(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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