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며
산을 오르며
  • 최승옥 수필가
  • 승인 2019.02.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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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승옥 수필가
최승옥 수필가

 

남편 친구 부부와 함께 수정산 입구로 접어들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산을 찾은 지 너무 오랜만이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따듯하지만 바람은 차다. 얼굴을 스칠 때마다 몸이 움츠러든다.

수정산 중간쯤 올라서자 조금씩 몸에 열이 난다. 산골짜기라 바람도 막아주고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인 거 같아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차다. 헐떡이며 잠시 숨을 몰아쉬기를 반복하며 걷다 보니 평탄한 올레길로 접어들었다.

수정산 중턱부터는 올레길이 나온다. 올레길부터는 일행이 나란히 걸을 수 있어 좋다. 뒤를 따라 한 줄로 걸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나란히 걸으며 나누는 담소는 정감이 깊다. 그런데 걸을수록 숨을 가쁘게 쉬는 사람은 나뿐이다. 내 숨소리를 내 귀로 듣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다. 다행히 중간중간 쉼터 의자가 있어 반갑다. 누구나 편히 오를 수 있는 곳이건만 오랜만에 찾은 내겐 힘겹기만 하다. 남편 친구는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는 양 어느새 저만큼 있는 의자에서 숨을 고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다가가 한숨 돌리려면 다시 걷기를 반복한다.

친구 부부는 음성 측근이 고향이다. 객지에서 살다 작년 말쯤 음성으로 이사를 왔다. 수십 년을 타지 생활을 하다 새집을 짓고 정착하려니 외지인처럼 낯설긴 매 한가지인가 보다. 도시에서 누렸던 여가 생활 역시 부족하다 보니 농촌 생활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친구 부부가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동기는 마음이 고파서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동안 평탄한 길만 있었겠는가. 친구는 5형제 중 막내다. 장남 역할을 하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맏형이랑 꽤 큰 회사를 운영하면서 지내왔다. 회사 직원들 식사는 물론이고 모든 허드렛일은 친구 부부의 몫이라 여기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살만한 무렵 몸이 견디질 못하고 잔병이 찾아왔다. 온몸이 쑤시고 통증이 심해 밤마다 깊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식사를 챙겨 드리는 것부터 하나하나 노부모님 걱정에 선뜻 수술날짜를 잡지 못했다. 결국, 차일피일 미루다 온 식구가 모일 수 있는 명절 다음날 수술날짜를 택했다. 수술받은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노모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어깨를 감싸고 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온 식구가 모여 있었다. 그런데 노모는 막내는 외면한 채 장남 이름만 찾았다 한다. 친구는 내색은 못 한 채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친구의 속앓이를 듣다 보니 노모의 심경이 의아하다. 그렇게 수십 년간 부모를 위해 헌신했는데 함께한 자식보다 장남만 찾은 건 무슨 연유일까. 어쩌면 장남은 늘 아픈 손가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모는 그리 오래 아파하지 않고 편하게 운명하셨다.

친구 부부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날려버릴 듯 저 멀리, 길게 `야~호'를 외친다. 산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힘든 겨울을 견디고 가지에서는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요즘 날씨가 따듯하니 매화나무도 봄인 줄 착각하고 있나 보다. 등산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커피를 탔다. 달달한 맛이 목젖을 타고 온몸에 기운을 돋아준다. 기분까지 새롭다. 커피믹스의 맛과 시원한 바람이 행복을 얹어준다. 친구 부부도 함빡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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