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배반
지능의 배반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11.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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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초등학교 때 나는 주판 선수였다. 그때는 지역단위 대회를 거쳐 전국 대회까지 있었다. 군 단위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었는데, 덧셈 뺄셈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했다. 그런데 더 잘하는 사람은 손으로 주판을 놓기 전에 암산으로 대부분 처리한다. 그렇게 보면 주판은 그냥 보조 수단이지 실제로는 머리가 하는 일이었다.

이제 주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컴퓨터가 주판을 대신하게 되었다. 컴퓨터는 주판과는 달리 사람이 계산하는 것을 보조하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 계산을 하는 기계다. 수치 계산은 매우 단순한 논리 과정이다. 단순한 과정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장치가 컴퓨터다. 이제 그런 컴퓨터가 단순한 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 해결까지 하는 장치로 진화했다. 컴퓨터가 인공지능이 된 것이다. 인공지능이란 지능을 가진 장치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지능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이 지능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식물도 자세히 관찰하면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인간보다 더 교묘한 방법을 동원한다. 식충식물이 곤충을 잡는 방법은 매우 교묘하다. 식물이 종족 번식을 위해서 씨를 퍼트리는 방법은 매우 정교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그렇다고 식물이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곤충을 잡는 방법은 참으로 놀랍다. 그렇다고 거미가 지능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거미가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에 의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장류에 들어가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동물들도 화를 내고, 즐거워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동물들은 감정과 생각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능은? 인간이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많은 동물도 지능이라는 것을 가지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동물들도 일을 계획하고, 계획한 것을 정교한 절차에 따라 실천하고 있다. 심지어 협동 작업도 한다. 사자나 하이에나들이 사냥하는 과정을 보면 지능이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전유물인 지능을 동물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간들은, 동물들의 지능과 인간의 지능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동물들의 지능은 단순한 지능인 반면, 인간의 지능은 고차원적이라는 것이다. 복잡한 상황을 분석하고, 계획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고차정신 활동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달라졌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인간보다 더 잘 해결한다.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를 컴퓨터가 이겼을 때, 우리는 컴퓨터가 지능을 가졌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컴퓨터가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이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컴퓨터가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해서(바둑에서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하려면 아무리 빠른 컴퓨터라도 수만 년이 걸릴지 모른다.) 이긴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판단해서 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고는 지능을 가진 컴퓨터, 즉 인공지능이라는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인공지능이 지능 중에서도 가장 고차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에 있어서 인간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단순 기능이라고 하는, 사물을 인식하거나 정서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능력보다는 복잡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고차 정신 능력에서 인간을 압도한다는 점이다.

세계기록을 보유한 마라톤 선수 앞에 자기가 가르치던 무명 선수가 갑자기 나타나 자기를 제치고 앞에서 달려갈 때, 그 모습을 보는 마라톤 선수의 심정이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인간의 심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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