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겨울나무
  • 심억수<시인>
  • 승인 2016.12.0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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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심억수

12월이다. 한 장 남아있는 달력을 바라보니 아쉬움이 가득하다. 떨어져 나간 수많은 나날 속에서 지난 세월의 아쉬움과 앞날의 희망이 교차한다.

창밖을 보니 아름답게 꽃을 피웠던 꽃나무들도 빈 가지만 남았다. 한여름 더위에 등을 내어 주었던 나무들이 잎 하나 남겨두지 않고 모두 비웠다.

비워야 채운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비워야 한다는 말은 잘하면서 정작 비우려고 노력은 하지 않았다. 남보다 더 많이 돈을 모으고 싶었고 다른 집 자식보다 우리 자식이 모든 일에 더 잘하길 바랐다.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다못해 나의 아내가 현모양처로 아름다우며 살림을 잘한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남을 돕는 일에는 인색했으며 내 그릇 채우는 일에 급급했다. 참으로 욕심스럽게 채우며 살았다.

찬란한 봄을 태동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당당하게 자신을 가꾸어 가는 나목을 본다, 빈 가지로 서 있는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비우는 연습을 해본다. 책장을 보니 오래된 책들이 꽉 차있다. 어떤 책들을 버려야 하나 아무리 둘러봐도 모두 애착이 가는 책들이다. 옷장을 열어보니 일 년이 다 가도록 입지 않고 걸어 둔 옷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 몰라 아내에게 맡기기로 하고 옷장을 닫는다. 수첩을 뒤적여본다. 행사일정 및 전화번호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어떤 것을 정리해야 하나 망설이다 다시 덮는다. 비우고 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러고 보면 채우는 일은 정말 쉬웠다.



새날을 채워 가는 겨울나무

빈 가지에 바람만 가득 걸렸다



가슴에 안았던 소망 앗아간 바람

기다림으로 걸어 두고

여백의 미를 안으로 다스린다.



버림으로써 초연해지는 너

땅속의 별이 되고 싶은 인생

당당한 알몸 되기 위해

난 무엇을 떨쳐야 한단 말인가



채워서 비워지는 게 아니라

비워지는 걸 다시 채우려는

나의 욕심을 거두고 나면

내 생의 뒤안길에 시간만 둘 수 있을까



모두를 버리고서야 모든 걸 얻은 듯

마냥 자유로운 너.



겨울나무처럼 마음을 비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도 당당하게 자신을 가꾸어 가는 나목을 닮으려는 마음을 졸 시로 표현해 보았다. 겨울나무처럼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비워야 정체되어 부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나는 지금껏 비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의 내부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꽉 들어찬 채움으로 인하여 부패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썩은 냄새가 나는 나를 인식할 것이다. 그동안 나만 모르고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남은 인생 마음 깊숙이 자리한 욕심을 떨치고 겨울나무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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