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5.12.08 2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안희자

오늘은 큰딸의 가족이 이사 가는 날이다. 그것도 남녘 끝이라니. 나는 딸에게 웃으며 귀양살이 간다고 놀려댔지만 속마음은 아리다. 나는 떠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고 이내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딸과 사위는 맞벌이 부부다. 몇 달 전 함께 승진을 하면서 사위는 제주도로, 딸은 청주 외곽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딸은 전출하면서 육아가 힘들어지자 고민 끝에 휴직을 택한 것이다.

딸이 이사 가기 전, 나는 아이들과 열흘을 함께 지내면서 애틋한 감정으로 이별연습을 했다. 열흘이란 시간은 시계 초침처럼 짧았다. 딸이 좋아하는 꽃게찌개, 손자가 잘 먹는 삼겹살을 식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한방에서 밥을 먹고 뒹굴며 정을 듬뿍 쌓았다. 그런데 떠나보내고 나니 아쉬움이 크다.

거실로 들어서니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가 휑하다. 금방이라도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아이가 두고 간 흔적들이 내 눈에 자꾸만 밟힌다.

지난 5년 세월은 행복하면서도 힘든 시간이었다. 남편이 퇴직한 후 우리 내외는 외손자를 맡아 키웠다. 그 애가 어렸을 때 남편의 등은 손자만의 놀이터였다. 개구쟁이 녀석은 할아버지의 넓은 등에 거미처럼 달라붙어 미끄럼을 타는가 하면 등 위에 올라타고 사정없이 빠대었다. 그러다 제 맘에 들면 할아버지의 볼에 입맞춤하곤 했다. 날로 성장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한없이 행복했다. 나에게 아이는 기쁨이며 삶의 활력소였다. 제 짝은 학교가 파하면 늦게까지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한다는 말을 전해들을 땐 나의 존재감을 느끼기도 했다.

온갖 집안일에, 식사준비며 아이 치다꺼리는 체력이 약한 내가 감당하기에 힘이 들었다. 게다가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엔 간식준비에 손이 바빴다. 그러다 보니 지인들과의 약속도 거절해야 했고 어쩌다 외출하면 시간 맞춰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가끔 남편과 다투고 공기가 냉랭해질 땐 손자가 약이었다. 고단함도 잠시, 아이 때문에 웃는 일이 늘어갔고 무뚝뚝한 남편도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

지난주에는 바다에서 손자가 고등어를 낚아 올리는 사진이 전송되었다. 어제는 목장체험으로 말 먹이를 주는 영상이, 오늘은 해변에서 동생이랑 모래성을 쌓고 노는 영상이 떴다. 환한 웃음이 사랑스럽다. 나는 다시보기를 한다. 많이 보고 싶다.

내가 자랄 때 부모님이 나의 끈이었듯이 세상살이는 사람과 사람이 인연의 고리를 엮어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끈은 사랑이다. 결혼 후 신혼 시절엔 남편이 나의 끈이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두 딸이 끈이었다. 또 남편이 퇴직한 후로 어여쁜 손자가 끈이 되어주었다.

사랑만 하기에도 인생은 짧다.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또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이를 버리거나 가족이 흩어지는 사건들을 종종 접한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을 잃은 탓이리라.

옥빛 물결 일렁이는 제주에서 자연을 벗 삼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돌아올 손자를 생각한다. 심성이 바다처럼 맑은 아이로 건강하게 성장하여 돌아오리라 믿는다. 내 품을 떠나며 손을 흔들어 주던 손자가 자꾸만 눈에 어른거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