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김장 드세요
선생님, 김장 드세요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5.12.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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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영숙

“선생님, 김장 드세요.”

3학년 학생이 5~6학년 논술 수업시간에 느닷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교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비닐봉지 세 개를 펼친다. 풋풋한 양념으로 갓 버무린 김장김치와 잘 삶은 아롱사태 수육, 따끈따끈한 손두부다. 엄마가 식기 전에 드시라고 했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머리카락이 이마에 엉겨 붙었다.

“선생님 젓가락도 없는데 어떻게 먹어요?” “오리지널 포크 있잖아. 손으로 먹어봐. 더 꿀맛일 걸?”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맨손으로 김장김치를 죽 찢어서 고기와 두부에 얹어 먹던 그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다. 어디 그뿐인가. 직접 빚은 김치만두를 양푼 가득 갖고 와 교장선생님까지 드리던 그 인정은 방과후 논술 강사로 활동하며 체험한 눈물겨운 포상이다.

지금은 전래동화가 되었지만 이따금 그 입맛이 그립다. 아니 그 맛에 깃든 정일 것이다. 김장을 하거나 만두를 빚을 때면 정겹고 따뜻한 그 이미지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러고 보니 겨울이다. 창밖엔 겨울비가 내린다. 고연히 베란다 창문을 툭 치는 걸 보니 저도 외로운 것이다.

정말 세상의 본질은 외로움일까. 정호승의 시처럼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실까.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누군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일까.

겨울비는 액자 속 풍경과 접속하는 매개이다. 햇김치에 밀려 베란다로 내놓은 묵은 김치 한 통을 꺼내 썰고 고기와 양파를 볶는다. 아이들도 다 나가고 먹을 사람도 없는데 만두소가 양푼으로 가득하다. 아마도 그 시절이 그리운 까닭이다.

지난 고학년 논술수업시간에 발터 벤야민의 <산딸기 오믈렛>을 다뤘다. 지금은 풍요롭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왕이 있는데 오십 년 전 왕자 시절을 그리워한다. 다급하게 쫓기는 전쟁 중에 산 중 오두막에서 얻어먹던 산딸기 오믈렛의 향수 때문이다. 궁정요리사에게 그 맛을 재현해 달라고 주문하지만 요리사는 만들 수 없다며 무릎 꿇는다.

물론 궁정 요리사는 산딸기 오믈렛을 맛있게 만들 황금레시피도 알고 있다. 그런데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상황’이라는 재료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쟁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추위에 떨며 굶주리던 긴박한 상황을 다시 준다면 똑같은 입맛을 느낄 거라는 명쾌한 해답이다.

그런 맥락일까. 시원한 맛을 낸다고 갈치젓갈에 생새우, 굴 기장을 넣고 듬뿍 재료를 아끼지 않았는데도 오래전 제자가 수업 중에 배달한 그 김치 맛을 찾을 수 없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반반 갈아 국산 두부로 빚은 만두 또한 학생의 어머니가 교실로 양푼 가득 들고 온 그 맛이 아니다.

이 또한 상황이라는 그날의 재료가 빠졌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정규 수업이 끝나고 슬슬 배고픔이 몰려드는 시간에 교장 선생님 몰래 먹는 그 짜릿한 상황을 연출하면 가능할까.

정들 시간이나 뜸 들일 시간도 없이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이때, 그 옛날 산딸기 오믈렛의 맛을 추억하는 것이 어찌 왕 뿐이겠는가. 이따금 밥 타는 냄새가 그리워 솥을 태우는 일도 어쩌면 그런 연유이다.

오래전 경험한 그 포근한 사랑을 어디로 배달할 것인가. 가끔은 풍요 속 허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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