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영역
완전한 영역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5.11.1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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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훌쩍 떠난 길. 참나무와 낙엽송이 적당히 어우러진 산은 화려하고 깊다.

비에 젖은 낙옆내음이 상큼했다. 창을 열고 달리며 맘껏 풍경에 취하다 들어선 뮤지엄 산. 자작나무 수피는 정오 햇살에 처녀 속살처럼 빛났다.

오크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니 고요하고 눈부신 물의 정원 뮤지엄 본관이 우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물에 비친 건물 그림자 위로 붉은 나뭇잎들이 동동 떠다녔다. 안내에 의하면 뮤지엄 산은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한 건축물의 대가 ‘안토 다다오’의 설계로 시작하여 빛과 공간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2년 전 개관한 미술관이라고 한다.

오늘의 목적은 바로 맨 끝에 위치한 제임스 터렐의 전시관을 보는 일이다. 본관에서 제임스 터렐관으로 미로처럼 이어진 길에는 하늘과 바람과 흔들리는 물그림자가 내내 따라왔다. 온전하게 풍경에 녹아든 마음은 가을빛에 시시각각 다채롭게 살아나 꿈틀대던 감정들이 명상으로 들어선 듯 고요해졌다.

제임스 터렐 전시관은 <하늘 공간> <지평선의 방> <웨지워크> <완전한 영역> 네 곳으로 나뉜다. 어린 시절 독실한 퀘이커교 신자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정신적인 수련과 침묵을 중시하는 엄격한 교육을 받은 덕에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명상과 사색을 요구한다. 그는 미술관에게 작품 설명을 하지 말라는 부탁을 했는데 관람자가 직접 작품 속으로 들어가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처음 들어간 <하늘정원>은 생경하면서도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둥근 돔 한가운데 둥그렇게 열린 하늘을 차분히 바라보노라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 풍경에 눈길이 가다 어느덧 나의 내면 안으로 들어온 시선을 느끼게 된다. 눈은 하늘에 있되 사색의 눈은 가슴으로 향한다고 해야 할까?

깜깜한 방, 벽면을 따라 더듬더듬 찾아간 전시실엔 사각 프레임이 나타난다.

프레임 안으로 손을 디밀어 보면 사실은 텅 빈 공간이다. 쐐기 모양 빛의 장막과 선들로 인해 마치 빛으로 가득 찬 무한대의 공간인 것 같은 환영을 만들어 빛으로 가득 한 비움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빛이란 어떤 존재일까 문득 생각이 많아진다. 안내자는 <웨지워크>에 대해 오랜 시간 빛을 연구해온 작가의 고민과 열정이 들어있는 작품이라고 짧게 덧붙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완전한 영역을 뜻하는 다. 방으로 들어서면 밝은 핑크빛 스크린과 마주하는데 마법처럼 스크린 안으로 들어서면 살구 빛으로 가득한 안온한 공간이 열린다.

마치 무중력 상태에 떠 있는 듯 혼미해지다 끊임없이 다채롭게 변화하는 빛 속에서는 오히려 길을 잃어버린 듯 불안했다. 그 불안 속에서 천천히 드러나는 공간의 윤곽을 파악할 즈음 경계의 끝에 서니 낭떠러지라고 조심하라는 충고가 날아온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착시와 환영 속에서 나는 문득 ‘바르게 역사 못배우면 혼이 비정상’이라던 말이 떠올라 눈을 크게 떴다. 착시와 환영으로 가려진 혼미한 공간이 경계를 잃어버린 우리 삶과 닮았다는 생각에 미치자 낭떠러지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로 바뀌었다. 나는 서둘러 그 공간을 벗어나 큰 숨을 들이마셨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했다. 완전한 영역은 불완전한 영역이었다. 그건 바로 내가 서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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