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11.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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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까만 밤을 투둑이며 채운다. 나는 온몸이 귀가 되어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비는 추억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추억의 소리가 넘실거린다. 와우산 순회도로를 비를 맞으며 걸었다. 조팝꽃이 하얗게 피어나던 그 푸릇한 사월에 그녀와 나는 무슨 이야기를 했었던가. 조팝꽃 위로 떨어지며 꽃잎을 흔들던 그날의 비와 빗속에서 하얗게 웃어주던 아름다운 그녀. 함께 걸었던 영상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지금 다시 그 길을 걷다 우연히 그녀를 만난다면 그저 스쳐 지나갈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모습이 변해서라기보다 내 기억이 퇴색했기 때문이리라. 그때는 그렇게 다정했었는데 얼굴이 까마득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름이라도 기억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지난 것들은 그날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이니. 그러나 비를 볼 때면 뽀얀 미소가 피어오르게 해주는 그녀. 비록 흐릿한 영상과 이름으로만 남아있지만 그 자체로 내겐 멋진 추억이다.

비는 그리움이다. 그 시절 엄마는 먼 곳에서 일하셨다. 느닷없이 비가 오는 날이면 내 가슴은 서걱였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는 그런 날이면 우산을 들고 학교에 마중을 나왔다. 1층 현관 앞에서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찾은 엄마들은 다정한 눈길로 아이를 안았다. 그 많은 엄마들의 숲을 지나 난 빗속을 우산도 없이 걸었다.

하늘을 보며 비를 손으로 받아보기도 하고, 혀를 내밀어 비의 맛을 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비를 즐기며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멈추어 비를 맞다 걷다를 반복했다. 버석했던 운동화가 폭싹 젖어들면 운동화를 벗어 양손에 들고 맨발로 걸었다.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비 오는 날 나는 학교에 가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느닷없는 비에 아픔으로 젖게 하지 않으리라고.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된 지금, 나도 그날의 엄마처럼 똑같이 하고 있다.

직장일로 분주하여 비가 오는 날이면 아이 걱정에 애만 태웠지 한 번 가보지를 못했다. 그리고 엄마를 이해하게 되면서 비에 젖던 그날들이 그리움으로 넘실거린다. 빗속에서 발로 느끼던 흙의 감촉,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빗물의 알싸한 기운, 흐르던 빗물을 발로 가르며 걷던 그날, 심지어는 아이를 보던 그 많은 엄마들의 따듯한 눈빛까지 그리워진다.

비는 사색이다. 비는 세상과 나 사이에 물의 장막을 드리워 모든 소음을 차단해준다. 비 오는 날이면 창밖 비의 커튼을 보며 평면적이지 않았던 내 삶을 더듬어 본다. 산골에서 유년을 보냈다. 개울물이 흐르고 돌담이 가득했던 그곳에서. 초등학교 때는 도시로 이사를 가서 지냈다.

고등학교 때는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고깃배가 넘나드는 포구에서 살았다. 그리고 대학시절엔 다시 도시로 왔다. 지난 일들이 빗줄기 속에 영화처럼 스친다. 비록 내 의지대로 이어진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들 속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었나 생각해 본다. 비를 보며 산만했던 내 인생을 조곤조곤 정리해 본다.

오늘도 비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내게 추억이고 그리움이고 사색이 되어준 비. 그 예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간간이 나를 들춰보게 해 줄 고마운 비.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는 계속 내리고 나는 여전히 창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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