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포옹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11.0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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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면 족했다.

빗속에서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했다. 나는 아들이 들어간 건물에서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아들을 들여보낸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에 가득하다.

오늘 전화가 왔다. 잠시 화장실 간 사이였다. 070전화가 찍혀 있었다. 아들 전화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걸려온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착신이 금지된 전화번호라는 여자의 음성이 나풀거렸다. 가슴을 예리한 칼날로 베인 것만 같았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을 다시 걸어보았지만 똑같은 여자의 음성만 되돌아왔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곳에 내 아들을 보내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다.

신병교육을 마치고 본격적인 병영생활에 들어가기 전 잠시 아들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알람을 맞췄다. 영이와 철이도 함께 가기로 했다.

아들이 한 침대에서 생활하며 친동생 이상으로 정을 주었던 강아지들이다. 신병교육 중 편지에도 “밥을 잘 주고 있느냐, 물은 잘 챙겨 주냐”는둥 늘 걱정을 했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아들을 찾았다. 맨 앞줄 중앙에 서 있었다.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들은 군기가 잔뜩 들어가 꼼짝도 안 하고, 뒤편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바람결에 사락거리며 대신 손을 흔들어 주었다. 퇴소식이 끝나고 흩날리는 가을바람 속에서 사진을 한 컷 찍었다. 강아지들도 아들을 알아보는 듯 혀로 얼굴을 핥으며 반가워했다. 우리는 예약해 놓은 팬션으로 향했다. 준비한 음식을 차려서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새벽에 일어난 탓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산골이라 할 것도 없는데 거국적으로 자자며 큰아들이 이불을 깔았다.

까무룩 잠들었다. 어린 아들을 안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들은 출근하는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울고 있었다. 나는 아들을 안고 토닥토닥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퇴근해서 돌아온 내가 와락 달려드는 아이를 안고 웃는 모습이 보였다. 여행지에서 보았던 바티칸의 한 성당과 피에타 상도 보였다.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러움과 슬픔의 바닥을 치고 종교적으로 승화된 평온한 얼굴이었다. 두서없는 영상들이 떠다녔다.

눈을 떴다. 아들이 부대로 들어갈 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오랜만에 본 아들을 옆에 두고 잠만 잔 것이 미안했다. 서둘러 저녁을 챙겨 먹였다. 그리고 짐을 꾸려서 차에 올랐다. 돈을 주려고 하자 아들은 한사코 마다한다. 쓸 일이 없다고 했다. 말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들도 내 손을 꼭 잡았다.

땅에 빗줄기가 꽂히고 있었다.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아들을 안아주었다.

먼저 애 아빠가 한참을 아들을 안고 뭔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큰아들이 동생을 꼭 안아 주었다. 나는 아들을 안은 채 속으로 기도했다.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길. 각기 다른 모습으로 포옹했지만 아들을 위하고 염려하는 마음은 똑같았으리라.

말하지 않아도 체온으로 느낄 수 있는 포옹의 따뜻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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