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거짓말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5.10.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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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외출준비를 하는 아내를 지켜보던 남편이 어딜 가느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장례식장 가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대답이란다.

상가에 가는 사람의 옷차림이 그게 뭐냐고 힐난하는 말투엔 가시가 잔뜩 돋아 있더란다. 입고 있던 붉은색 윗도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얼른 집을 나왔다고 한다. 괴산에서 열리는 예술제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육십 대 중반인 그녀는 첫인상이 편안했다. 고생을 별로 하지 않은 넉넉한 집안의 안주인같이 매사가 긍정적이며 늘 웃는 모습이었다. 가까운 사이가 되면서 웃는 얼굴 뒤에 가려진 그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도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무속인 집안으로 시집와 살면서 겪어온 일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다.

시집식구들은 어린 며느리를 종처럼 부렸고 남편은 무능해 보호자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으면서 죽음의 언저리를 맴돌게 하는 우울증에 시달려도 누구 하나 눈길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들일과 집안일을 모질게 시키면서 아이들의 학비조차 주지 않았단다. 남편은 나와 상관없다는 듯 모른 체했다. 오로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시어머니와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장생활을 한 지난 이십여 년은 공순이의 고난의 세월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3교대를 하면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시집식구들의 수발을 들고 잠을 줄여가며 농사일을 해야 하는 고된 삶이라 정작 아이들은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단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엄마 대신 집안일을 하던 큰아이에게 청각장애가 오고 시력이 떨어져도 병명을 모르니 치료가 되지 않더란다. 그 딸을 시집을 보낼 때는 가슴이 무너지더라는 말을 할 땐 그녀는 울었다. 자식들이 모두 결혼함으로 공장을 퇴사했지만 지금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진행 중이다. 그토록 모질게 대하던 시어머니는 치매 때문에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남편도 몸과 마음이 온전치 못해 아내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흔들리지 않았던 그녀의 존재는 시나브로 한집안의 버팀목으로 깊은 뿌리를 내렸다.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때도 좋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으면서 어쩌다 외출하려는 눈치가 보이면 시어머니와 남편은 몹시 불안해한단다.

그러니 외출의 목적을 꼭 가야 하는 곳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며 활짝 웃는 그녀의 입술에는 립스틱이 샐비어꽃처럼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아마도 그의 남편은 외출하는 것만 못마땅해서 옷차림만 타박했지 곱게 화장한 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럼 우리 모두 행사장이 아닌 장례식장에 가는 거네.”

장례식장이 어느 듯 여자들도 쉽게 써먹는 거짓말의 장소로 변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켜졌다.

그날, 그녀의 젖은 날개는 반짝이는 가을 햇살에 물기가 걷히고 대신 예술이라는 이름에 젖어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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