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와 채송화
해바라기와 채송화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5.10.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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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10월은 아쉬워하는 내 마음을 모르는 채 이별을 서두르고 있다. 그리움을 안고 다시 만남을 견디기엔 참으로 긴 시간의 인내가 필요하여 헤어짐의 아쉬움은 더욱 안타깝다.

얼마 남지 않은 10월을 곁에 두기 위해 빛깔 고운 단풍길과 은은한 향기 품은 구절초 산비탈, 지칠 줄 모르며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코스모스 언덕을 매일 찾는다. 들판의 곡식을 알알이 영글게 하는 따가운 햇살을 안고 논두렁도 거닐고 얼굴 하나 가득 씨알을 품은 해바라기 밭도 기웃거리며 나는 마치 가을 여인이 된다.

파란 가을 하늘에 잘 어울리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다 어릴 적 우리 집 마당 한구석 작은 화단가에 심겨진 해바라기와 채송화를 떠올린다.

해바라기는 그 색이 너무도 밝아서 태양의 꽃이라 불리며 꽃말은 숭배, 그리움, 기다림이다.

어릴 적 키가 작은 나는 긴 목으로 담장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키 큰 해바라기가 무척 부러웠다.

또한 투명한 잎줄기 끝에서 샛노랗고 짙은 핑크빛 꽃을 피우는 꽃말이 순진, 가련인 채송화가 피어나면 어찌 그리도 예쁘고 귀엽던지….

담장에 탐스럽게 누워 있던 누런 호박과 키 큰 해바라기, 앙징스런 채송화는 사이좋게 어울려 우리 집을 예쁘게 꾸며주었고 가을의 풍성함을 더해주었다.

꽃들은 크거나 작거나 화려한 색이거나 소박하거나 모두 아름답다. 아마도 욕심을 버리고 비와 햇볕과 바람까지도 골고루 나누며 내면까지도 아름다움으로 가꾸기 때문인 것 같다.

해바라기와 채송화처럼 큰 대조를 이루는 꽃 중에서 어느 꽃이 더 예쁘고 가치 있는가를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꽃 다 축복받은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고 보호받아야 할 당당한 권리가 있으며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꽃들은 크다고 교만하지 않고 작다고 주눅들지 않으며 시기도 욕심도 없다.

사람도 이 세상에 존재의 가치를 공평하게 부여받고 태어났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갑질 논란’과 ‘감정 노동자’란 말이 생겨났다. 가진 자와 높은 자들이 없는 자와 낮은 자에게 저지르는 횡포가 심각하다.

백화점 직원이 조금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하여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렸다는 보도에 가슴이 아프다. 조선시대 신분의 주종 차이로 굴욕을 당했던 비인간적인 역사를 생각나게 한다.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무릎을 꿇어야 했을까? 무릎을 꿇지 않으면 자신의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어찌할 수 없던 그들이 측은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감정을 억누른 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감정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예를 접하며 자식을 둔 어미로서 너무도 안타깝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이 가을, 해바라기와 채송화처럼 크고 작음, 씨앗의 양을 논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주고 너그러움과 베풂으로 함께 어울려 외롭고 어려움으로 지친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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