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곡열차
협곡열차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5.10.2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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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용례

집안일로 며칠 종종댔더니 답답하다. 이런 나를 문우님이 불러주었다. 버선발로 아니 맨발로 달려나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들녘은 양지바른 쪽부터 햇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해마다 맞이하는 가을, 여전히 새롭고 아름답다. 오랜 가뭄으로 강물은 빈곤하고 나무들은 윤기를 잃었다. 그래도 바람은 시원하고 달다. 가을이니까 기차 여행이 좋겠다 하신다. 차와 장소가 어디인들 무슨 대수랴. 가을여행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뛰는걸. 봉화 분천역으로 향했다.

협곡열차는 친환경열차로 태양열 에너지로 움직인단다. 스위스와 수교 50주년을 맞이하여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을 하여 역사의 외관은 스위스샬레분위기를 냈다고 한다. 스위스풍의 그림으로 마치 동화처럼 예쁘다. 협곡열차는 30킬로로 가다가 최고속도는 60킬로라니 밖의 풍경과 함께 천천히 천천히 움직인다. 편안하고 좋다.

분천역에서 철암사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다는 양원역에 잠시 머문다. 대합실에서는 잔 막걸리와 간식을 먹을 수 있고 그곳에서 생산하는 산나물과 채소도 살 수 있다. 양원역은 지금도 이 기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란다. 작고 오래된 양원역 대합실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출발하여 하늘 세평 꽃밭 세평이라는 시가 있는 승부역에 도착했다. 승부역, 몇 년 전 그때는 승용차로 왔었다. 그와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뭉클했다.

인생은 찰나처럼 지나간다고 선인들이 말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내가 삼십 대 중반 험준한 고개를 위태롭게 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스님이 쉰한 살이나 되어야 평지가 나온다는 말씀을 하셨다. 쉰한 살 돌아오지 않을 시간처럼 아득하게 들렸었다. 그런데 내 나이 벌써 낼 이면 육십이다. 그 위태롭고 막막했던 협곡을 잘 빠져나온 우리 가족 모두에게 고맙다. 계곡과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산천 풍경을 달려가는 협곡열차에서 나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았다.

지금도 석탄을 생산하고 있는 철암역 주변에 정다운 동상이 있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아내는 아기를 업고 남편을 배웅하고 있다. 남편은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아내가 있는 집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풍경이 있을까. 차갑고 딱딱한 동상이지만 부부의 표정과 모습이 애틋하다. 이 협곡열차도 한때는 검은 석탄을 나르던 산업 영동의 동맥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작고 예쁘지만, 이 열차는 건장한 청년의 맥박처럼 빠르고 건강하게 달렸으리라. 지금은 세월을 관조한 도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느라 고단한 사람들에게 한자리 내 주고 있는 것 같다. 양옆으로 흐르는 계곡과 산촌의 풍경들을 벗 삼아 편안하게 쉬라며 조근조근 달린다. 협곡열차의 뜨거웠던 여름은 가고 여유로운 관광열차로 또 그의 소임을 하고 있다. 고졸하고 평화롭다.

이 작은 기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엔 정다운 미소가 있다. 여행은 풍경이 아무리 아름답고 먹을거리가 풍성해도 좋은 사람과 함께해야 즐겁다. 답답한 내 마음을 알고 불러내 준 문우님께 감사하다. 마음을 풀어내기에 충분했다.

협곡열차여행은 가고 오고, 머무는 시간까지 세 시간이다. 그런데 그 감동은 참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가을처럼 짧지만, 가을처럼 아름답고 풍성하다. 문우님께 받은 이 멋진 선물, 가을여행. 다음엔 내가 준비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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