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머무는 곳은
삶이 머무는 곳은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5.10.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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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언제부터인가 7080이란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는 습관이 되었다.

‘세시봉 콘서트’에 다녀온 후 내 핸드폰 속에는 지난날 젊은 시절의 음악이 저장되어 운동이나 집안일을 할 때도 습관처럼 흘러간 가요에 터치한다.

어둠이 내릴 무렵 빈방을 휘감는 통기타의 선율은 옛 기억들을 끄집어 올린다. 어느 순간 거꾸로 가는 시계마냥 난 연애 시절로 슬그머니 발을 담근다.

그때는 커피숍이라기보다는 다방이라는 곳에서 연인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취해 시간을 붙들어놓고 커피의 맛도 모르면서 폼을 잡으려 블랙커피로 음미하곤 했다. 수없이 무한 반복되는 레코드판의 노래처럼 우리들의 이야기도 무한 반복일지라도 세상을 다 얻은 양 행복했었다.

그렇게 데이트를 하며 지나온 시간들, 그 추억에 젖은 세시봉의 콘서트에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고 선명하게 그려지는 매 순간들, 들뜬 마음을 끌어안은 몽롱한 이 기분, 한동안 여운이 가라앉지 않고 당시를 회상하며 흔들어 놓는 마음, 그렇게 잊히고 있었던 추억을 끄집어 올린 한 편의 영화 같은 7080 노래는 가슴속에 자리 잡아 며칠을 두고 순간순간 머릿속에 맴돈다. 영화 같은 노래를 듣기보다는 난 젊은 날의 황홀했던 연애 시절에 멈춰진 환상의 세계에서 머문다.

이런 기분일까? 치매도……, 읍내 농협창구가 들썩들썩 어수선한 분위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한곳으로 모인다. 무슨 일일까? 어르신 한 분이 통장의 돈을 누군가 모두 인출해 갔다고 호통을 치시며 야단법석이다. 농협창구 여직원들이 서로 짜고 당신의 돈을 모두 횡령했다고 믿는 어르신, 어르신이 의심하고 있는 통장의 입, 출금의 계산방식은 매우 정확하다. 정상인들이 계산하여도 놀라울 정도로 한 치 오차가 없다. 우리도 어르신 계산방식에 절로 빠져들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오래전의 한 부분이란 것. 과거에 멈춰버린 기억장애인 것이다. 제아무리 설명과 이해를 시켜도 막무가내다. 오로지 당신의 말만 하시곤 남의 말은 좀처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눌한 발음으로 울분을 이기지 못해 가슴을 치며 한탄을 하신다. 때론 눈물을 흘리며 당신의 돈을 찾아달라고 절절하게 호소를 하신다. 생떼를 부리는 통에 정상적인 업무가 흐트러진 창구, 급기야 식구들이 달려오고 어르신을 업고서 집으로 모신다.

이런 증상이 치매다. 쉼 없이 되풀이되는 어르신의 간절한 외침이지만 정상인들이 듣기에는 또 치매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식이다. 치매증상이 나타나면 거침없이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완전 막무가내 일방통행인 행동.

유유히 달리던 내 기억의 수레바퀴가 잔잔하게 휘감은 ‘세시봉의 7080노래’ 추억속에 멈춰 과거에 맴돌듯 그 어르신도 그런가 보다.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 어르신 더 이상 밖의 생활을 인지조차하고 있지 않는다. 오로지 농협통장에 멈춰진 시간, 그 어르신의 세상 전부이다. 느리고 더디게 행동하는 것처럼 더딘 기억이 퇴행하여 멈춰진 암울한 황혼을 지켜보는 암담한 마음에 가족들이 소리 없이 운다.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시대의 치매중풍은 점점 증가추세지만 핵가족화와 늘어나는 여성의 사회참여로 부모를 돌볼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고통이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절실한 문제다. 황혼, 그 어르신의 삶이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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