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음
경고음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5.10.1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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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안희자

“새댁은 아직 팔팔한디 어째서 여기까지 왔수?”

같은 병실 환자인 할머니가 안쓰럽다는 듯이 내게 묻는다. 그 말이 서러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여름은 그야말로 찜통더위나 다름없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밤이면 열대야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날들이었다. 지금까지 두 번의 큰 수술을 치르면서 단출한 집안 살림살이도 숨 쉬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남들에겐 쉽고 간단한 일이지만 나에겐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더위가 맹렬해질 수록 가볍게 죽을 먹어도 속이 메스껍고 먹는 족족 토해냈다. 화장실도 수없이 들락거렸다. 장염인 줄 알았다. 동네 병원에 다녀도 차도가 없었다. 밤이면 온몸이 붓고 금방 숨넘어갈 듯 호흡곤란이 왔다. 앉아서 꼬박 밤을 새우기를 이틀째 되는 날은 아예 거동조차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일상생활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급기야 응급실로 갔다. 여러 가지 검사 끝에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입원을 하게 되었다.

대학병원 653호실. 이곳은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모인 병실이다. 온갖 링거액을 매달고 힘겹게 투병하는 연로하신 환자들을 보면서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매일 채혈을 하고 영상촬영에 주사까지 몸은 탈진 상태였지만 다행스럽게 수술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생 진료를 받아야 하는 서글픔에 무시로 좌절감이 엄습해왔다.

일주일을 병실에 누워 지내면서 그동안 내 몸이 보내는 경고음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음을 크게 후회했다. 타인들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경청하고 걱정해주면서 정작 내 몸의 경고음엔 무심했던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낯선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처럼 우리의 몸도 고장이 나면 미리 알려주는 자동경보음이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도 삶에서 느끼는 굴곡진 감동은 덜 하겠지만, 삶의 만족도는 훨씬 클 것이다.

이번 경험으로 육신의 병은 내 몸이 아프다고 신음하는 것이고, 지친 삶을 잠시 정지시키라는 경고음임을 깨닫는다. 몸의 한계를 벗어나 복잡한 세상사에 과도하게 집착한 탓도, 나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고 무리하게 덤벼든 탓도 있으리라. 내 몸이 보내는 경고음을 무시하고 버텼으니 참으로 미욱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고음을 들으며 살아간다. 자동차 경적소리, 엘리베이터 경고음, 화재 경보음 등등 여러 가지 기계음엔 민감하면서 몸이 보내는 경고음은 무시해 버린다.

이제 사는 날보다 세상을 떠나야 할 시간이 머지않은 나이다. 무모했던 젊은 날에는 아프지 않고 사는 일이 큰 행복인 줄 몰랐다. 이번 일을 계기로 건강이 재산이라는 것, 건강을 잃으면 삶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말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내 의지대로만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더러는 체념하고 더러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나의 삶을 느리고 진중하게 살아가라는 진심 어린 충고의 말로 들린다.

나는 퇴원을 하면서 병실 환자 분들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빨리 쾌유하시라는 인사를 드렸다. 그분들의 덕담처럼 이제는 나도 세상일에 무뎌지며 건강하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

병원을 나서며 생각한다. 비록 갈잎처럼 서걱거리는 몸일지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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