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가을편지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9.1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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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 이효순 <수필가>

어머니. 

억새꽃이 가을 언덕에 곱게 피는 9월이 되었어요. 어느덧 고희를 넘긴 흰머리 소녀에게도 가을이 오고 있어요. 아침저녁 부는 바람과 뜰에 피어나는 가을꽃이 전해 주네요. 분홍 구절초와 하얀 물매화도 목을 길게 빼고 파란 하늘이 보고 싶은가 봐요. 제가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 작은 꽃들이 말해주는 가을 소식을 오늘은 어머니께 전하고 싶어요.

어머니. 

우리 집 가까이 사는 분이 청양 고추를 땄다며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오셨어요. 저는 봉지에서 빨간 고추를 골랐어요. 어머니와 함께 고추 밭에서 빨간 고추 땄던 기억이 나요. 아주 따가운 가을 햇볕 아래 어머니와 나란히 고추를 따던 기억이 오늘은 왜 이리 선명하게 살아나는지 모르겠어요. 잘 익은 고추 빛깔처럼 그렇게 곱게 말이에요. 

그때 어머니는 하얀 수건을 머리에 썼고 저는 아버지의 밀짚모자를 써서 햇볕을 가렸었지요. 정성 들여 가꾼 고추로 김장 때 쓰라고 돌절구에 손수 찧어주시던 고춧가루가 생각났어요. 늘 좋은 것은 딸 주시려 했던 어머니가 오늘은 더 보고 싶어요. 어머니 생각할 때마다 눈가에 맴도는 눈물은 신이 사람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인가 봐요.

어머니. 

우리 집 뜰 이곳저곳에서 자란 참취 꽃을 꺾었어요. 제가 처음 도자 배울 때 손으로 빚은 투박한 하얀 화병에 꽃아 식탁에 놓았어요. 어머니 저희 집에 오셨을 때 함께 했던 식탁이에요. 하얀 병에 평안히 자연스레 꽂힌 참취 꽃은 깔끔한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네요. 늘 웃음을 머금으셨던 어머니 모습 같아요. 

참취는 이곳저곳에서 씨가 떨어져 자라 꽃까지 피우고 있어요. 저희들이 어머니 품을 떠나 독립을 하듯 참취도 그렇게 독립을 해서 꽃까지 피우고 있네요. 

어머니. 

이제 보름이 지나면 추석이 와요. 어머니께서는 추석 송편에 쓸 솔잎을 여름방학인 8월에 뽑아 놓으셨지요. 그때 솔잎을 뽑으며 솔이 깨끗이 뽑힌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직장생활할 때도 어느 해엔 그렇게 했었어요. 저는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 생각에 산책할 때 소나무만 보면 생각나요. 가끔 곁에 가서 솔잎을 몇 잎 뽑아보기도 했어요. 그리고 냄새도 맡아 보고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그땐 어린 저로 돌아가고 싶지요. 그래서 송편을 만들 땐 꼭 그렇게 솔을 뽑아 두었다 사용하면 좋다고 지인들에게도 전해 주었어요. 

어머니. 

어제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금자네 밭에 갔었어요. 고구마 줄기 따려고요. 그것을 빌미로 네 친구가 모였어요. 어머니께서도 다 아는 친구들이어요. 영옥이, 정숙이, 친구들 거의 할머니가 되었어요. 함께 교직생활하고 정년퇴직하여 후반기의 삶을 살고 있어요. 늘 부담 없는 친구들이라 편해요. 만나면 좋은친구죠. 금자가 농사지은 고추, 가지, 깻잎을 땄어요. 그렇게 흉허물 없이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너무 감사하지요. 

점심때는 친구들과 함께 준비해온 김밥을 먹고 산언덕에 누워 하늘을 보았어요. 키 큰 소나무 사이로 파란 가을 하늘이 저희를 내려보고 있었어요. “너희들 그렇게 좋으냐” 하며 보는듯 했어요. 저희들이 앉은 곳 주변에는 산새소리와 가을벌레가 가을바람과 함께 귓가에 들려요. 

눈앞에 가까이 보이는 양지바른 산 아래 억새가 하얗게 피어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어요. 어머니 보고 싶어 가을편지 전해드렸어요.

큰딸 효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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