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접시
도자기 접시
  • 임정숙 <수필가>
  • 승인 2015.06.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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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정숙 <수필가>

사무실 책상에 분홍빛 한지로 곱게 싼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친구가 다녀갔나 보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포장을 풀지 않아도 말없이 찾아온 그녀 온기가 전해진다.

연갈색 바탕에 황토 빛깔 꽃문양이 그려진 도톰한 사각 도자기 접시였다. 가장자리가 조금 안으로 굽은 질박함이 편안하고 운치가 느껴진다.

무엇을 담아도 적당하다. 생선구이 한 토막 올려도 정갈하다. 샐러드를 얹어도 산뜻하다, 포도 한 송이 담았는데 옹색함이 없다. 음식마다 돋보인 묘한 끌림의 그릇 하나에도 믿음이 읽어진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으려는 서로의 눈빛과 다를 게 없다.

설거지하게 되면 은연중 그 접시가 부딪쳐 깨지기라도 할까 봐 더 눈길이 간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닦는다.

그녀가 공예관에 들려오던 날이다. 필요한 그릇을 사고 나오려다 문득 발길을 멈췄다고 한다. 하필 내 얼굴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망설임 없이 매장에 되돌아갔을 게 뻔하다. 둘러보다 좀 전 본인이 샀던 종류의 접시로 자연스레 손이 가더란다. 선택하는데 그리 고민할 이유가 없음을 안다.

둘이 닮은 부분이 많다. 평소 옷 입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격식에 매이지 않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옷을 선호한다.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는 불편하고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떤 물건이든 보는 눈의 기준도 비슷하다. 화려함보다는 단순하고 깔끔한 쪽이다. 노래방 애창곡도 같은 과다. 이문세 ‘옛사랑’에 가슴 저민다.

문제는 점원이 그릇을 포장하는 동안 갈등이 일더란다. 먼저 산 접시보다 내게 주려던 접시 빛깔이 더 옅어서 신경이 쓰였나 보다. 자신의 것과 똑같은 접시를 내가 더 좋아할 가능성을 알고 있어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 의지대로 당연히 결정해도 나는 모를 일이었다. 어떠하든 문제 될 건 없었다. 결국, 본능에 충실해 먼저 산 접시는 자신이 차지했단 말끝에 함께 웃음이 터졌다. 아무거나 택할 권리가 본인에게 있음에도 왜 자꾸 신경 쓰이는 거냐며 투정이다. 고해 성사로 죄를 면해 주겠노라 농담했지만, 그게 그녀 본심이다. 상대에 대한 애정을, 관심을 지나가듯 무심한 듯 표현함이 그녀 스타일이다.

몇 년 전 한 모임에서 시작된 인연이다. 알고 보니 동만 다르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각자 직장 일로 가까워도 생각만큼 자주 만나긴 어려웠다. 그래도 유독 마음이 지치고 힘든 날, 한밤중에도 금세 의기투합할 수 있는 지척이 얼마나 운 좋은 일인지 깨닫곤 한다.

가끔 동네 골목 모퉁이 작은 찻집이 오작교다. 얼굴 곱상한 중년 여주인은 밤 열두 시가 넘어도 으레 그러려니 한다. 고맙게도 괜찮은 손님들로 봐 준다. 오히려 우리 수다에 끼어들어 종종 흐름을 깨지만, 이야기하는 걸 은근 즐긴다. 여주인 말대로 위로가 되어주는 만만한 이가 옆에 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몇 배 더 든든한 힘이다.

인고의 세월을 바쳐야 도예가는 흙을 도자기로 완성한다. 그러나 단지 흙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거나, 흙과 싸우는 인위적인 기교만으로는 그 작업은 허사가 되고 만다. 흙은 마치 생명체 같아 흙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물론 그 마음조차 기억한다고 한다. 너그러운 손길 만나면 넉넉한 느낌의 도자기가 되고, 온순하게 다루면 온화한 기품이 깃든다는 것이다.

사람 관계도 도자기와 다를 게 없다. 필요할 때만 달콤해지는 변덕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내 안의 그녀는 호들갑스럽지 않아 좋다. 종종 식탁에 오르는 도자기 접시의 수수한 기억만으로도 그 마음 헤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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