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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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옥 <수필가>
  • 승인 2015.05.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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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상옥 <수필가>

출가한 큰딸이 다녀가는 날이면 온 집안에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기에 통 큰 장모의 손맛으로 후한 맞이를 하고 돌아갈 때는 두 손 가득 봉송까지 싸 들려 보낸다. 그 후 집에 잘 도착했다는 기별을 받아야만 그날의 내 몫은 끝난다.

그러나 출발한 지 훨씬 지났지만, 연락이 없어 전화하니 교통체증으로 도로에 정체되어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무거운 몸이 얼마나 힘들지 걱정이 되어 어떠하냐며 전화를 끊고서도 어미의 마음은 좌불안석으로 서성이는데 문자가 날아왔다.

“엄마! 나보다 운전하는 오빠가 더 힘들지….”

그렇구나! 그렇지….

딸의 문자를 보는 순간 내 딸만 걱정하는 별수 없는 편협한 어미구나 생각하니 삼십여 년 전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결혼하고 다음해에 첫아이를 낳았었다. 내게 온 새 생명의 신비와 기쁨은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컸으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모성의 본능에 채 적응도 하기전인 삼 일 만에 아기를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애간장을 녹이는 슬픔에 빠진 딸을 친정어머니는 몸조리 명목으로 친정집으로 들이셨고 어떤 위로도 자식 잃은 아픔을 치유할 수 없지만, 엄마의 품 안에서 아픈 가슴의 상처와 건강이 조금씩 치유되어 갈 즈음 시어머님의 전화를 받았다. 

“괜찮니?”

“네! 이제 몸도 마음도 많이 괜찮아졌어요.”

“너만 괜찮으면 되니? 내 아들은 처가에서 얼마나 불편하겠니….”

나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선을 타고 전해오는 시어머님의 음성은 차가 왔고 노기를 꾹꾹 눌러 참고 있다는 걸 금방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온몸에 살을 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 달달 떨려왔고 간신히 도닥이던 슬픔이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이 다시 아파져 왔다.

처가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자식 잃은 어미의 아픈 가슴만 할까.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다 똑같이 사랑하는 줄만 알았는데 시어머님의 자식 편 가르기는 무섭기까지 느껴졌다.

그 후 오랜 세월을 한 가족으로 무심히 살면서도 시어머님께서 다정하게 손을 내밀 때면 이상하게도 그날의 상처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오곤 했다. 

그날 전화기를 타고 전해오던 냉랭하고 매몰차게 느껴지던 음성의 기억은 그날 이후 고부간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놓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딸의 문자는 문득 그때의 시어머님을 닮아있는 나를 바라보게 했다. 

내 마음에 박힌 말 한마디는 들보가 되어 어머님을 향해 불신의 벽만 높게 쌓아 마음의 편을 가르고 다른 면을 아예 보려 하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생각하니 허탈해져 헛웃음이 나왔다. 

한없이 많은 사랑을 내게 주셨음에도 그날의 한마디 말을 오랫동안 상처로만 부여안고 돌덩이를 내려놓지 않고 살아온 편협한 가슴이 어떻게 따뜻하고 푸근한 엄마의 마음으로 될 수 있을는지.

백 년이 되어도 손님이라는 사위를 들이고 든든한 아들자식을 얻었다며 딸과 똑같이 모성으로 품으리라는 장모의 마음은 모순이 있었음을 진정 부인할 수 있을까.

이젠 당신의 삶조차 기억이 희미해져 그리 귀하게 여기는 품 안의 아들자식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하시는 어머님의 음성이 불현듯 그리워졌다. 촛불처럼 조금씩 꺼져가는 날들이 다 사그라지기 전에 이제는 자식의 마음으로 먼저 따뜻하게 안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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