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장 위에 선 화려한 고명
인생 2막장 위에 선 화려한 고명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5.05.2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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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지난해 이맘때인 것 같다. 산들바람이 부는 어느날 동아리에서 옥천 ‘정지용문학관’을 방문하였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려는 찰라 누군가 흥분한 목소리로 일행 중 한 분을 부르고 계셨다. 서로 부둥켜안다시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두 분은 금새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일행은 문학관을 나와 ‘정지용생갗를 모두 관람하고 나왔음에도 두 분은 여전히 과거로 갈아탄 타임머신을 멈추질 않고 있었다. 자연스레 우리 일행도 합석을 하여 두 분의 이야기 속으로 발을 담그고 있었다. 

요즘 만개한 이팝나무처럼 허옇게 자리잡은 흰머리는 두 분을 은퇴라는 나이까지 올려놓았다.

그분은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공직에서 퇴직한 후 이곳 문학관에서 제2의 인생, 이른바 인생 2막장에 아름다운 고명을 얹어 화려한 삶을 설계하고 계셨던 것이다. 현직에 근무하면서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틈틈이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퇴직 후 일자리 창출을 하신 것이었다. 

퇴직 후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중소기업이나 큰 회사가 아니면 어떠한가. 스스로 보람과 만족을 느끼면서 나 자신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란다. 퇴직을 하고 오고 갈때가 없어 등산이나 혹은 친구들의 사업장에서 무료하게 지내는 이들이 주변에 많이 있단다. 

그분들은 아침에 어디든 가방을 들고 출근할 곳이 없다는 사실에 우울감에 빠지고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스스로 자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인데 자신은 노후를 준비하여 일자리 창출은 물론 자신의 능력까지 봉사를 하는 재능기부까지 일적이조 효과를 얻은 셈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일선에서 물러나기란 그다지 십지않은 일. 현직에 있을 때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하루라도 빨리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상사에게 문책을 당하는 지옥 같은 직장이라는 수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오죽하면 직장인들은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는 말이 생겼을까마는. 그러나 막상 은퇴라는 두 글자가 손끝에 다가오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막막함에 우울감에 빠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의 은퇴설계 노년의 길목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고명이란 음식의 모양과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뿌리거나 얹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음식의 맛을 살리는 시각적 효과를 두는 것처럼 이른바 인생 2막장인 노년의 시간을 문학관에서 봉사하는 일, 노년의 인생 라이프스타일이다.

고령화 사회에 살면서 활기찬 노후를 보내고 싶은 것을 누구나 염원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제아무리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설계를 한다고 해도 실천하지 않으며 무용지물 아니던가. 세상일은 머리만 가지고 살 수는 없는 일. 현실에 부딪쳐 모난 부분은 둥글게, 성급함을 유하게, 그리고 이해와 양보로서 노년을 설계하는 것. 결국 몸으로 부딪친 사람이 더 잘하고 적응을 잘 한다는 것이다.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지갑 속에서 잠을 잔다면 시간과 경제적 손실이 아니겠는가.

머릿속의 상상은 그림의 떡인 것처럼. 아무리 젊음이 좋다고 하지만 불혹은 꽃피는 삼월이요, 지천명에 들어서면 열매를 맺는 시기이며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그 시기는 아름다운 황혼이라 감히 생각을 해 본다. 결국 인생의 절정은 삶의 맛을 느끼는 노년의 길목이 아닐까 한다.

은퇴라고 주저앉기보다 인생 2막장의 고명을 얹은 그분, 나른해진 봄날 잃어버린 입맛 확 살려주는 별미처럼 상큼하게 다가오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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