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5.05.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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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늘 곁에 있을 거라는 안도감에 소중하다는 걸 잊고 산다. 모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부러운 마음에 가던 길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지난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때 아버지의 바람기로 인해 어머니의 삶은 외롭고 고단했다. 어머니는 시장 한 모퉁이의 허술한 공간에서 삯바느질을 했다. 5남매의 치다꺼리에 바쁜 어머니는 늘 잿빛 스웨터에 고무줄 바지만 입으셨다. 앉은뱅이 재봉틀은 어둠을 밝히면서 돌아가고, 별들이 까만 밤을 수놓을 때 멈추었다.

무슨 천이 되었든 어머니의 손만 닿으면 고운 한복으로 변신했다. 쾨쾨한 냄새가 나는 옹색한 공간이었지만, 나는 어머니 곁에서 심부름도 하고 책도 보며 잠이 오면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곁눈질로 배우려 해도, 어머니는 절대로 나를 재봉틀 곁에 오지 못하게 하셨다.

“손재주가 좋으면 신역(身役)이 고된 법이여. 여자는 남편 복이 있어야 잘 사는 겨.”라며 손사래를 치시곤 했다.

나는 도시에서 여고시절을 보냈다. 내 생일 날, 난데없이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셨다. 누추한 차림새가 창피하고 싫었다. 눈치를 챈 어머니는 돈을 쥐어주며 곧장 내 손을 잡고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우동을 한 그릇만 시켰다. 배가 부르다는 어머니 말만 믿고 나는 맛있게 먹었다. 게 눈 감추듯 먹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식당을 나와서도 등 떠밀듯 어머니를 보내고 빠르게 돌아섰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철없던 그날이 떠올라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마음만은 와락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기고 싶었는데….

어머니를 지치고 힘들게 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어머니는 늦은 밤까지 아버지를 기다리며 대문 밖을 서성거렸고, 끼니때마다 여전히 아랫목에 아버지의 밥 주발을 묻어 두셨다.

아버지는 간간이 집에 들어오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좀처럼 내색하지 않으셨다. 다만, 댓돌 위에 놓인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을 광채가 나도록 닦아 놓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왔다가 가신 날이면 어둠 속에서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등 돌리고 흐느끼는 어머니를 보며 나도 덩달아 울었다. 어머니의 베갯잇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께 왜 바보처럼 참고 사느냐며 울분을 토해냈다. 어머니는 나직이 말씀하셨다.

“너도 이다음에 시집가면 알게 될 게다.” 어쩌다 깜빡 잠이 깨어 눈을 떠 보면 어머니는 밤이 이슥하도록 재봉틀을 돌리고 계셨다. ‘드르륵~ 드르륵….’

그때는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나서야 어머니의 심중을 알 것 같았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오시고 행복도 잠시 어머니의 몸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사그라져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허망함에 가슴이 무너졌다. 어머니가 반평생을 힘들게 살아오는 동안 무엇이든 해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진즉에 깊은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죄스러울 뿐이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유품을 꺼내어 본다. 낡은 재봉틀도 만져보고 스웨터를 가슴에 안아본다. 어머니의 체취가 느껴져 어머니 품인 양 포근하다. 속살은 다 내어주고 껍질만 남은 어머니 몸 같다. 알맹이만 품어주던 껍데기는 어머니의 추억과 함께 내 가슴에 묻었다. 어머니가 머물다 간 소중한 자리에 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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