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꽃향기
5월의 꽃향기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5.05.05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 5월입니다. 잔인하다는 4월의 황사 바람까지 비껴낸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푸르게 웃고 있습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연초록빛들이 아름다운 봄을 산란하고 있습니다. 연둣빛 새순에 지난날들이 새록새록 나의 마음을 흔듭니다. 

돌이켜보니 일상의 날들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늘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에게 소홀하였구나 하는 자책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주말과 휴일엔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보내려 노력해 보았지만 애·경사와 각종 모임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한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인내하고 용기를 주는 가족의 정감어린 배려는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5월의 푸른 생명에 눈을 뗄 수 없게 되고 마음은 자꾸 착해지는 느낌입니다. 투명한 미래를 불안해하며 열심히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등을 살갑게 두드려 주지도 못했습니다. 

아내의 푸석한 머리칼의 뒷모습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이지만 입 밖으로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 주었습니다. 지척에 계시는 어머님께 자주 찾아뵙기는커녕 안부 전화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을 위해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 부끄러움에 마음속으로만 미안해할 뿐입니다. 

죄스럽게도 부모님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 끝이 없다는 것을 내가 부모가 되어서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식사랑에 한평생을 바치시고 이제는 장성한 아들 그늘에서 편히 사실 연세에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어 따로 사시면서 늘 나는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님. 나를 위해 헌신하시는 어머니 마음을 만분의 일이라도 생각하고 어머님이 나를 사랑하는 반만큼도 어머님과 내 자식에게 베풀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5월의 꽃향기로 피어나길 희망했던 내 젊은 날의 꿈들이 지는 꽃잎에 매달려 있습니다.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니 나의 삶에 만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식에게 나처럼 살아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동안 자아실현을 위한 꿈과 희망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나의 삶은 기교가 들어간 노래처럼 순간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만 추구하였지 깊은 울림의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자식들이 나를 닮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반듯하게 개척하여 대견할 뿐입니다. 이제 나의 삶의 가치도 다르게 가꾸도록 노력하여야겠습니다. 

그동안 좋은 아버지 노릇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내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다정다감한 남편이기보다는 권위의식과 남자라는 자존심을 내세워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효자 노릇도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우선 내 마음이 불편한 것만 생각하였지 두루두루 챙기고 마음 써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시간은 잠시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들어도 살아온 날보다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족과 대화의 시간을 보내야겠습니다. 

5월은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서되는 감사한 계절입니다. 유년의 5월은 나의 마음을 희망으로 가득 채워주더니 지금의 5월은 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봄비에 단장하는 푸른 5월의 들판을 바라보니 내 어머니의 5월은 연분홍 치마를 휘날리는 낙화입니다. 내 아이의 5월은 꽃 진자리마다 열매를 키우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나의 5월은 키 큰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새순을 피우고 싶어합니다. 5월은 가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부모의 손을 다정히 잡아보는 계절입니다. 앞으로 내 삶이 가정에서 5월의 꽃향기로 피어나기를 다짐해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