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콘서트와 ‘또 하나의 조국’
종북콘서트와 ‘또 하나의 조국’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1.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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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황선의 구속과 신은미의 강제추방은 어쨌든 분단국가가 치러야할 또 하나의 국가적 격통으로 기록되게 됐다. 문제가 된 대담(對談)콘서트라는 것이 두 사람의 바람처럼 통일을 위한 평범한 아줌마들의 북한여행기를 공유하는 자리였든, 아니면 정부의 주장대로 종북을 전파하는 위장된 자리였든 그 아픔의 진원은 당연히 지구상에 유일하다는 한반도만의 분단 상황이다.

이번 종북콘서트 논란을 지켜보면서 언뜻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80년대 초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에 의해 야기된 이른바 ‘또 하나의 조국’ 파문이다. 지금의 50대 중후반 세대들에겐 당시 열병을 앓게 한 소설 ‘생의 한 가운데’로 기억되는 그녀는 75년 한국방문에 이어 1981년 북한에도 들어가 김일성까지 만나 그를 장시간 면담한다. 

그 때의 기록으로 출간한 여행기가 우리나라에선 ‘또 하나의 조국’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면서 한 때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다가 돌연 금서(禁書)로 묶이게 된다. 김일성과 북한 체제를 노골적으로 옹호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루이제 린저는 자신의 반 나치와 반 파시즘의 내공을 바탕으로 처음엔 독재국가 북한과 김일성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방북을 감행,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직설어법으로 이들을 곤혹스럽게 했지만 결국엔 아주 호의적인 기록을 남기게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녀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세습에 대해 “북한 인민들이 무의식적으로 유교의 영향을 받는다면 예부터 장자가 아버지를 계승하듯 그것은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기에 국가의 경우라도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했는가 하면, 김일성 개인 숭배에 대해서도 “인민은 그를 자신과같이 인식하고 존경한다. 그는 조선정신의 화신이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인민들을 먹여살리고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아 주었다”는 식으로 기술했다. 

그녀가 했다는 북한 여행이 안내 즉 가이드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고 결국 그 이후에 있은 서너번의 추가 북한방문 때는 김일성과의 염문설까지 일으켰다. 지금 정상적인 사람이 이런 내용을 읽는다면 동조는커녕 웃음만 나올 일이다. 

어차피 북한은 우리의 상식을 무색케 하는, 과거 왕조시대보다도 더한 폐쇄된 나라다. 그러니 혼자서 마음대로 여행한 사람과, 가이드의 안내로 그쪽이 보여주는 것만 경험한 사람의 기록은 당연히 다르다. 요즘 종편에서 맹활약을 벌이는 탈북자들이 경험한 지옥같은 북한이 있다면 루이저 린저와 황선·신은미가 경험한 정반대의 북한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본 것이 북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거니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또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에 의해 강요되고 주입되는 전체주의적 시각의 북한인식이 아니라 이렇듯 각 각의 실체에 대한 접근이 전제되는, 그리하여 그것으로부터 도출되는 가장 보편적인 북한 인식인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성숙한 민주사회의 기본이고 그래야만 통일도 가능하다. 

한창 북한여행이 활성화돼 지역의 시사주간지 충청리뷰의 금강산 마라톤대회 등을 계기로 충북에서도 숱한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단 한 사람도 북한에 남고 싶다거나 남한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 경우는 없었다. 북한 사람들과 그들이 누리는 자연환경의 천진무구(天眞無垢)를 부러워 하다가도 화장실에서조차 어버이 수령!과 위대한 원수님이! 출몰하는 1인 독재의 야만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선 같은 민족으로서 그저 가슴을 아파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북한얘기만 입에 올리면 모든 이성적 판단은 한 순간에 고꾸라진다. 도처에 레드컴플렉스 망령이 되살아나고 국가의 심리적 장벽은 오히려 더 높아만 가고 있다. 

얼마전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가 국민의식 조사를 했더니 놀랍게도 우리나라 국민 71%가 5년 전보다 집단갈등이 더 심해졌다고 답했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기업과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가난한자의 끝간데 없는 충돌, 그 끝이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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