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수업
특별 수업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4.07.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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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며칠 전 D 여상에 계신 선생님으로부터 특별한 부탁을 받았다. 내가 어떻게 고등학생들에게 수업을, 당연히 거절해야 하는데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학교로 가면서 나는 지나간 내 여고시절을 생각해 보았다. 학교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은 고리타분하고 엄마가 하시는 말씀은 잔소리로 들릴 뿐, 공부는 하기 싫고 선생님과 엄마 눈을 피해 소설책만 읽어댔다. 그것도 주로 연애소설을. 그리고 어떡하면 교복 말고 사복을 입어볼까 궁리를 했고, 문제집 사야 한다고 돈 타다가 친구들과 빵집에 가고, 돌아보니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문제아도 아니었다. 요즈음 글을 쓰다 보면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다. 책을 보고 사전을 찾는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뭐가 돼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을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인가 보다.

열일곱 살에는 열일곱 살답게 적당히 철부지여야 하고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떨고, 발랄하게 웃어야 하고 세상 무너질 것 같이 철철 울어야 한다. 열일곱 살에 애늙은이처럼 철이 든 학생은 재미없다. 본분만 잊지 않는다면 나는 세상경험을 하면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뜨는 아이돌 엑소에게 정신을 빼앗기는 것도 멋진 일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각자의 엄마가 하시는 말씀 중에 듣기 싫은 말을 해 보라고 했다. ‘안돼, 빨리 들어와, 어디가, 너 하는 짓 안 봐도 뻔해, 엄마 친구의 자식들은 한결같이 공부 잘하고 똑똑한지 비교당하는 것, 이런 것들이 견딜 수가 없단다.

‘우리 딸 잘하는구나, 네가 내 딸이어서 기쁘구나.’ 믿어주는 한마디의 말이 듣고 싶고 필요했던 것이다. 공부도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한마디의 말에도 움직이지만, 서울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을 청주로 옮기는 일보다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 또한 사람의 마음이다. 나는 어른을 상대로 하는 강의를 몇 년째 하고 있지만 매번 오늘은 어떤 글을 써 오셨을까 기대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며 설레고, 긴장되고, 미안하고, 떨렸다. 아주 짧은 순간 코끝이 시큰했다. 세월호 사고의 이 또래의 학생들이 생각났다. 착하고 예쁜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좀 더 멋진 세상을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여고생들의 해맑은 얼굴, 긴 생머리, 무엇보다도 지금 아니면 입을 수 없는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없이 부럽다고 말했다.

우리는 저 여린 새순들에게 벌레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바람에 흔들려 꺾이지 않도록 기꺼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지지대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크고 작은 흠집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일부러 흠집을 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오늘 여학생들과 한 시간을 보내며 짜릿한 기쁨과 무한한 희망을 보았다. 학생들에게 특별수업을 한 것이 아니라 혼탁했던 내 마음이 맑아졌다.

“여러분 예쁜 모습 오래도록 간직할게요. 좋은 말 쓰기와 공손한 태도로 인사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저도 기억해주세요. 1학년 4반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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