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4.06.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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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마트 진열대에서 녀석을 찾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s라인 몸매가 대세라지만 무는 아가씨의 통통한 종아리마냥 쭉 벋고 매끈한 것이 제격인지라 그런 놈을 고르려니 내 손놀림이 빨라진다. 그때 두루뭉술한 무가 눈에 띄었다. 속이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선뜻 그 무를 골랐다.

날것의 싱싱함이 좋아서 나는 가끔 무생채를 즐겨 먹는다. 무생채에 고추장 듬뿍 넣은 매콤한 비빔밥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무생채를 하려고 무를 잘랐다. 그런데 무의 속이 겉보기와는 다르다. 겉은 실해 보이는데 속은 군데군데 구멍이 송송 뚫려 있고 노인의 피부마냥 푸석거린다. 분명 바람 든 무다. 속이 허술한 내 몸처럼 속이 빈 것이다.

무를 썰며 그녀 생각을 했다. 오래전 이곳 아파트로 이사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였을 때 따뜻하게 손잡아 주었던 이웃집 그녀, 그가 내겐 큰 위안이 되었다. 가끔은 자신의 농장에서 키웠다며 금방 뜯은 상추며 아욱 등을 가져왔다. 참 고마웠다. 때문에 아파트의 삶이 편하다지만 이웃과 단절된 삭막한 곳이라는 생각은 나의 편견이었음을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곁에서 본 그녀의 삶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사랑으로 애완견을 기르고, 불혹의 나이에도 틈틈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한다는 그녀는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속내까지야 알 순 없었지만 우린 그렇게 소소한 것을 나누며 좋은 이웃이 되었다. 

지난번 나는 종합병원에서 큰 수술하고 퇴원하였다. 그날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터라 겨우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우연히 그녀도 함께였다. 그녀는 내 가슴의 상처를 보고 몹시 의아해했다. 그리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갑자기 내 손을 붙잡더니 통곡하는 게 아닌가. 웬일인가 싶었다.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녀 말에 의하면 평소 내 모습이 너무나 평온해 보여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을 거란 생각에 속으론 많이 부러워했단다.

그녀가 눈물을 쏟으며 “많이 힘드셨겠네요. 저만 세상 고통을 다 짊어진 것 같았어요.” 라고 말하는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된 사연은 슬프다. 중학생인 아들이 오래전 교통사고를 당했었는데 그 충격으로 인해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단다. 그녀는 부모로서 자식의 아픔을 감당할 수 없어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파서 혼자 울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마음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한때는 나도 그렇게 울던 때가 있었다. 병든 내 몸을 인정하기 싫어 분노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그뿐인가. 누구에게도 아픈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지인들과의 만남도 꺼려했었다. 그러니까 나의 속내를 감추고 싶었던 게다.

그렇다. 겉은 단단해 보여도 잘라보지 않으면 아무도 무의 속을 알지 못하듯 사람 사는 모습도 이와 닮았다. 202호나 207호나 지지고 볶으며 살다 보면 기쁘고도 슬픈 것, 세상의 모든 단맛 쓴맛 다 보고 사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나도 살아가면서 알았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라서 그런 걸까. 생각해 보니 육신이 아픈 나나 마음 아픈 그도 영락없는 바람 든 무다. 하지만, 속은 비었어도 끝까지 속을 보호하는 단단한 껍질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나는 무를 썰며 알게 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아픔을 견디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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