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은 있되 유적은 없는 천안시
발굴은 있되 유적은 없는 천안시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4.01.28 2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 <천안·아산>

백제 지방세력의 존재를 알려주는 진기한 유물이 1997년 천안 용원리를 시작으로 2003년 공주 수촌리, 2006년 서산 부장리에서 잇따라 발굴됐다.

4~5세기 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한성백제 세력에 복속은 됐지만 강력한 자치권 행사하던 토착 정치세력의 존재를 알리는 유물이 쏟아졌다. 금동관, 환두대도, 중국제 수입토기 등 이른바 위세품으로 백제 왕실에서 천안·공주·서산의 지방세력에 하사했던 명품이다. 해당 지역이 삼한시대부터 강력한 소국이 자리를 잡고 지역 중심이 됐음을 알리는 유적이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사적 475호로 국가 지정을 받고 그 일대를 2011년 사적공원을 말끔히 정비해 사적공원화됐다. 공주 수촌리고분군도 사적 460호로 지정받고 지난해 발굴체험시설을 만드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면 천안종합휴양관광지내 천안 용원리 고분군은 어떤가. 휴러클리조트 옆 언덕에 무덤 하나 덩그러니 복원해 놓았을 뿐이다. 역사공원 조성은커녕 사적 지정도 받지 못했다. 총 140기 고분이 발굴돼 공주 수촌리에서 볼 수 없는 용봉문환두대도, 서산 부장리선 출토되지 않은 중국제 닭머리 주둥이 주전자가 나왔는데 이렇게 홀대받고 있다.

지난 24일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열린 ‘천안의 역사문화자원 현황과 활용방안’학술세미나. 발표자들은 시의 문화재정책 부재를 꼬집었다. 이들은 20여 년 전부터 천안지역 조사·발굴에 여러 번 참가했던 학자다.

이훈 공주대 교수는 “천안은 고대문화의 저수지 같은 곳”이라며 “북쪽에서 내려온 선진문화가 이곳에 머물다 서해안·공주 쪽을 흘러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천안 매장문화재 가운데 사적 지정받은 곳은 한 군데도 없고, 도 기념물이 몇 곳 있을 뿐이다. 근대‘애국충절’유적에만 관심을 쏟아 고대문화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석동·불당동·두정동 유적은 한반도 중서부의 청동기시대 최대 유적지로 고고학계가 인정하는 곳이다.

그러나 출토 유물은 모두 다른 지역으로 나갔고, 형식적으로 유적공원만 만들었다.

백종오 한국교통대 교수는 사라지는 천안의 고대유적을 하나 하나 거명했다. 백제의 전형적 축성기술인 판축기법이 남아 있는 목천토성. 겨우 50m 남았는데 그마저 인근 음식점이 야금야금 파먹어 가고 있다.

청당산성은 대학이 들어서면서 성벽 120m가 헐려 나갔다. 일봉산성·봉서산성도 등산로 개설로 사라지고 있다. 입장 호당리 분청사기 가마터도 온전하지 못하다.

천안은 급속한 도시화로 다른 지역보다 개발에 따른 유적 발굴이 많았다. 많은 유적에서 매장 유물이 출토됐다. 그리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안시엔 장기적인 문화재행정 로드맵이 없다. 순환보직인 과장과 팀장은 1~2년마다 갈리고 그 아래 주무관들은 눈앞에 닥친 업무 처리에 허덕인다. 지역 학계 및 언론도 큰 관심이 없어 쓴소리도 하지 않는다. 무사안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로 향토유적위원회, 역사문화위원회를 만들면 뭐하나. 시는 위원 선임만 할 뿐 회의를 도무지 열지 않는다. 회의 결과를 수용할 자세가 안 돼 있으니 지적과 충고가 귀찮을 뿐이다. 예산 ‘1조2600억원 도시’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한 지역대학 교수가 세미나에서 지난해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마한 맹주국인 ‘목지국’ 학술조사 필요성을 시장에게 설명해 승낙을 얻었으나 실무선에서 무산됐다. 그는 “이젠 천안시를 위해 뭔가 연구할 마음이 사라진 게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