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은 공무원, 이틀은 정치인?
5일은 공무원, 이틀은 정치인?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4.01.2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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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지난해 10월 어느 일요일 오후 충남 천안의 한 식당. 기업체 대표 A씨는 모 기관장으로부터 만찬 초청을 받고 그 자리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다른 기업체 대표들과 함께 박찬우 안전행정부 제1차관이 배석해 있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기관장의 소개로 박 차관과 인사를 나눴고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마친 뒤 헤어졌다.

A씨는 “그때 박 차관이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을 확신했다”며 “식사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14일 성무용 천안시장의 자서전 출판기념회가 열린 천안시 서북구 KT&G 인쇄창 체육관. 도지사 출마를 준비 중인 성 시장의 행사장에 박 차관은 나타났다. 사회자가 내빈을 소개할 때 그의 이름까지 호명했다.

그리고 최민기 천안시의회의장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지난 18일 오후 천안시 동남구의 한 예식장. 박 차관은 이곳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후일담으로 행사 주최 측에 자신을 소개해주지 않았다는 불만까지 표출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문제는 이날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온 나라가 비상에 걸린 상황이었다는 것. 국무총리는 긴급 관계 장관회의를 소집하고 안전행정부는 장관 주재로 전국 시·도 부단체장 영상회의까지 할 정도로 내각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런데도 정부 재난담당 부처의 제1차관이 자리를 비우고 사실상 자신의 선거운동을 한 것이다(관련기사 본보 23일자 1면). 더욱 한심한 건 박 차관이 그날 밤늦게 까지 천안에서 머물다 귀경을 했다는 점이다.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18일 오후 3시쯤 예식장을 나와서 이후에도 한참을 천안에서 머물다 밤 10시에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AI 때문에 다른 공무원들이 안간힘을 쓰는 사이에 정치적 사욕만 챙겼다는 비난이 당연히 쏟아졌다.

확인 결과 그는 지난해 10월쯤부터 거의 매 주말과 휴무일을 고향인 천안에서 보냈다. 학연·지연 관계인 지방의원 등 측근들이 그의 인지도를 높여주고자 함께 다니며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최근에는 지역 몇몇 대학에서 그를 초빙해 특강도 하게 했다. 가족들도 나섰다. 그의 부인은 지난 1일 천안시가 주최한 신년 해맞이 행사와 천안인의 상(像) 참배 장소에 나타나 시민들과 접촉을 하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까지 받았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부인이 나설 정도면 사실상 그의 출마는 기정사실인 모양이다.

갑자기 공직선거법이 궁금해졌다. 법이 어떻게 돼 있기에 안전행정부 차관이 주말마다 선거 운동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을까. 1주일에 닷새는 공무원, 이틀은 정치인인 그의 행보가 어떻게 가능할까.

먼저 공직선거법 제60조는 국가공무원은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일 90일전까지 사퇴를 하고 예비후보 등록을 하면 선거 운동이 가능하다.

애매한 건 선거운동의 정의에 대한 규정이다. 제58조 1항을 보면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 개진 및 의사 표시(제1호), 입후보와 선거 운동을 위한 준비 행위(제2호)는 선거 운동으로 보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 입후보와 선거 운동을 위한 준비 행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공직자가 선거기간 전에 매 주말 고향에 내려와 지역 정치인 소개로 사람들을 만나고 지지를 부탁하는 것도 그 범위에 들어갈까. 아무리 봐도 두루뭉술하기만 한 선거법. 개정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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