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독수리
까치와 독수리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3.12.2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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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잎이 진 가지에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고 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마른 잎들, 파르르 떨며 저물어가는 한해를 안타까이 지켜본다.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까치밥이 겨울 하늘에 더 선명하다. ‘감나무 언덕’의 창밖으로 보이는 정경이 쓸쓸하지만, 운치가 있다.

까치 두 마리는 까치밥을 먹으려 깍깍거리며 감나무로 날아온다. 그때 나타난 새 한 마리가 보였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새매 같았다. 까치 두 마리는 자기들의 영역을 넘보는 그 매를 둘이 공격하여 끝내 쫓아내고 말았다. 영역 싸움은 사람, 동물, 식물 모두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가 보다. 작은 까치의 협력하는 모습이 무척 놀랍게 보였다.

여러 해 전 겨울이었다.

막내가 군에 있을 때 면회 간 적이 있다. 말로만 듣던 전방부대였기에 남편과 처음 찾아가는 길이 조금 두려웠다. 눈에 띄는 빨간 글씨로 ‘지뢰조심’ 그리고 부대 입구마다 높게 쌓아놓은 군복 색깔의 모래포대와 담, 그리고 철조망이 마음 한곳을 스산하게 했다. 그런 마음을 안고 찾아간 그곳에 넓은 연병장이 눈에 들어왔다. 온통 군복 입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추운 겨울처럼 그곳의 분위기도 을씨년스러웠다.

아이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눈 후, 연병장 하늘을 바라보니 독수리 한 마리가 큰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큰 날개를 양쪽으로 펴고 힘차게 연병장 하늘을 나는 모습이 아주 늠름 해보였다. 우리가 사는 내륙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라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동물원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을 뿐 처음 보는 것이어서. 조금 후엔 까치 몇 마리가 날아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겨울 하늘 아래 신기한 상황이 펼쳐졌다. 공중에서 까치와 독수리의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작은 까치 여러 마리가 저보다 훨씬 큰 독수리를 사방에서 깍깍거리며 공격을 시작하였다.

한참 공중전을 하더니 독수리가 지쳤는지 까치들의 공격에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이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믿지 않는다. 어떻게 그 매서운 독수리가 까치에게 쫓겨 가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바꾸었다.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믿을 수밖에. 까치 여러 마리의 작은 힘이 모아지니 큰 독수리도 내어 몰았다.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영물로 사람들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만 나는 알고 있었다. 작은 고추가 매운 것처럼 까치에겐 알지 못했던 끈질긴 강인함이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며 우리 삼 형제를 키우던 때가 생각났다. 막내가 동네 아이한테 얻어맞고 울고 들어왔을 때, 쌍둥이 녀석이 대문을 열고 뛰어나가더니 때린 아이 앞가슴부분의 옷을 손으로 쥐고 혼내 주고 있었다. 제 동생을 보호하기 위한 형제간의 우애가 기특하게 보였다. 그것을 말없이 보는 것은 바른 일은 아니지만, 어린 것이 동생을 배려하는 마음이 보여서 그냥 묵묵히 지켜보았다.

쉬임없이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은 바위를 뚫고, 골짜기의 도랑물은 모여서 큰 강을 이룬다. 가정이나 일터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서로 힘을 모아 지혜롭게 이겨내는 모습이 세모를 맞으며 여러 곳으로 번져갔으면 좋겠다. 이런 것이 모두 우리가 사는 나라를 위한 것들이 아닌지.

까치가 그렇게 작은 힘을 서로 모아 큰 독수리를 몰아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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