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약국 이젠 꿈도 안꿔요”
“개인 약국 이젠 꿈도 안꿔요”
  • 송근섭 기자
  • 승인 2013.09.26 2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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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전문직 그들의 애환
<4> 악조건에 골병드는 약사들

대기업 ‘드럭스토어’ 지역까지 침투

인근 병원 이전땐 매출도 '반토막'

약사 배출은 증가… 휴·폐업 잇따라

충주에서 8년간 약국을 경영해 온 A씨(44)는 최근 고민 끝에 휴업을 결정했다. 2년 전 같은 건물에 있던 병원이 이전하면서 자연스레 약국을 찾는 손님들이 줄었고, 이는 매출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졌다. 다른 병원이 들어설 것이라는 말만 믿고 적자 경영을 이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8년이나 약국을 경영하면서 단골도 많이 생겼고, 나름 지역에서 발을 넓혀와 폐업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본인의 약국을 휴업하고 다른 곳에서 근무 약사로 일하며 수입부터 안정을 찾기로 했다.

A씨는“같은 건물에 있던 내과와 인근 소아과가 차례로 문을 닫으면서 하루 처방이 20건도 안되는 날이 많아졌다”며 “직원 급여도 제대로 못 챙겨주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휴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약국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근무약사가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요즘은 주변에서도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씁쓸해 했다.

청주에서 일하는 약사 B씨(32)는 약국 개업의 꿈을 일찌감치 접었다.

약국의 경영난이 나아지지 않을 뿐더러 그나마 영업이 잘되는 대형병원 주변 약국은 권리금만도 억 단위에 이르기 때문이다. 동네 의원 인근에 약국을 개업한 선배들은 만날 때마다 어려움을 토로한다.

B씨는 “요즘은 내 약국을 갖기 위해서는 빚을 지고 시작하거나, 나중에 빚을 지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아직 젊은 편이기도 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B씨가 근무하는 약국의 상황도 점차 악화되고 있다. 처방전이 필요 없이 일반 의약품과 생활용품,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대기업 계열의 ‘드럭스토어’가 지역에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CJ, GS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드럭스토어는 청주에만도 6곳에 이른다. 드럭스토어는 앞으로 더 몸집을 키워나갈 것으로 보여 소규모 약국들로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악조건이 계속 늘어나면서 휴·폐업을 택하는 약국도 자연스레 증가하고 있다.

이미 수 년 전부터 약국 개업 수보다 폐업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1853곳이 폐업을 해 1732곳에 그친 개업 약국을 크게 앞질렀다. 2011년에도 개업 약국 수는 1666곳인 반면 폐업이 1683곳으로 집계돼 처음으로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현실에도 약사 배출은 점차 늘어나 업계간 경쟁만 심화되고 있다. 해마다 평균 1300여명씩 늘어났던 약사는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도입 이후부터 2000여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예전보다 경쟁이 배로 강화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입은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약사 소득신고는 2009년 월 평균 245만원에서 2010년 249만원, 2011년 246만원으로 집계됐다.

한정된 수입에 어려움만 많아진 요즘 약사들은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표현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병원 앞에서 처방 환자를 유도하는 처지까지 간 일부 약사들은 스스로를 ‘삐끼’와 다름 없다고 탄식한다. A씨는 “내가 약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안정적인 수입에 나름의 사회적 지위도 있다고 자부했다”며 “요즘 후배 약사들을 보면 오히려 그들이 환자에게 마음의 처방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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