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허덕이다 결국 월급의사로"
"빚에 허덕이다 결국 월급의사로"
  • 송근섭 기자
  • 승인 2013.09.23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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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전문직 그들의 애환
<2> 설 자리 잃은 개원의들의 한숨

평균 10~14년 걸려

전문의 자격 취득

수억 투자 병원 개업

환자·의료수가 감소 등

해마다 적자 못면해

올해 822건 폐업

30~40대 절반 넘어

청주에서 정형외과를 운영해 오던 A씨(38)는 최근 폐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의사’라는 화려한 직함과 달리 수입은 다달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A씨는 대전의 한 병원에서 월급의사로 일하다 청주에서 소위 잘나가던 정형외과 의원이 매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1년 전 의원을 인수했다.

당시 수천만원의 권리금까지 들여가며 초기 투자비용만 5억원을 훌쩍 넘었다.

일부 주변의 만류에도 A씨는 “몇 년만 고생하면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이후부터는 고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 했다. 자신이 문을 연 의원 인근은 물론 청주지역에 의사 선·후배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 점도 A씨에겐 호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A씨의 환상은 개원 초기부터 무너졌다. 가장 큰 악재는 해마다 떨어지는 의료수가 였다.

현재 의료수가는 원가의 70%대에 겨우 머물고 있다. 의료업게 종사자들도 이미 수가 인상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해마다 적자는 늘어났다.

오랜 경기침체로 인한 환자 감소, 대형병원으로의 수술 집중, 해마다 3500명 가까이 배출되는 동종업계와의 경쟁 등 외부적 요인은 A씨가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다.

A씨의 평균 월 수입은 약 640만원. 일반 직장인들에겐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액수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A씨는 개원을 하며 금융권에서 3억7000여만원을 대출 받았다. 한달 이자만 18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행정 등 직원들 급여만 500만원 가까이 지출되고 건물 임대료 및 관리비 등을 모두 합하면 A씨의 수입을 훌쩍 뛰어 넘는다.

‘언젠가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1년을 넘게 버텼지만 투자금 회수는 커녕 빚만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해 졌다.

적자를 막기 위해 제약사에 지불하지 못한 외상값도 한계에 다다랐다. 요즈음은 ‘의사면 먹고 살 만 하지’라는 주변의 시선이 야속할 지경이다.

A씨는 “학부 6년, 군복무 3년, 인턴과 전공의(레지던트) 5년 등 모두 14년을 고생하다 전문의 자격을 얻었다”며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는데 떵떵거리고 살기는 커녕 빚쟁이가 됐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오히려 대학 동문 중 일찌감치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는 지금도 월 600만원 정도의 수입을 고스란히 집에 가져다 준다”며 “그 친구에 비하면 나는 본전도 못건진 셈”이라고 말했다.

결국 A씨는 조만간 의원을 폐업하고 대학 선배가 운영하는 병원의 월급의사로 돌아갈 생각이다.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표면적인 수입은 적겠지만 매달 빚을 지고 사는 것 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A씨와 같은 개원의들의 어려움은 통계상으로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1년 요양기관 현황 및 개폐업 의료기관 현황’에 따르면 2011년 심평원에 신규개설을 신고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2030곳, 폐업신고는 1662곳이 낸 것으로 각각 집계됐다. 한달 평균 139곳의 의원이 폐업한 셈이다. 또 2010년 대비 폐업률은 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30~40대 젊은 개원의들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심평원의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연령별 개폐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의원급 의료기관의 폐업 건수는 한해 평균 1500~1600여건에 달했다.

이 중 30대와 40대가 대표자로 있는 의원의 폐업건수가 각각 256곳, 604곳을 기록해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올해도 전체 폐업건수 822건 중 30~40대 대표자 의원 폐업이 461곳을 기록해 55.1%라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최근에는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재학생들도 개원의보다 임상의학교수나 월급의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의료기관 폐업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월급의사의 자리도 한정되기 마련이고, 결국 개원을 택한 의사들이 또다시 월급의사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크다.

지역에서 의원을 운영해 온 개원의들이 앞으로의 전망이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고 탄식했다.

청주의 한 개원의는 “수가가 더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 전망하는 상황에서 결국 동종업계 사람끼리 한정된 파이를 놓고 나눠먹어야 하는 것”이라며 “잘 되는 곳은 꾸준히 잘 되겠지만, 어려움을 겪는 의원들의 경영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본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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