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숨어 우는 바람소리
<18> 숨어 우는 바람소리
  • 전영순 <수필가>
  • 승인 2013.06.13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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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순의 미국에서 온 편지
전영순 <수필가>
무력·권력이 지배한다면 아름다운 강산도 무의미

가을·겨울 공존 '스모키 마운틴'

200여년 전 인디언 자연 활보

체로키마을 발길… 흔적 둘러봐

스모키 마운틴으로 여행가는 날 사방이 가을빛으로 가득하다. 스모키 마운틴(Great smoky mountain)은 애팔래치아 산맥의 일부로 노스캐롤라이나 주와 테네시 주 경계선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미 동부가 자랑하는 3대 국립공원이자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빽빽한 나무들이 내뿜는 탄화수소와 수증기에 의해 생성된 푸른 안개가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어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Great smoky mountain)'이라 부른다.

이 맘 때가 되면 한국에서는 단풍구경을 떠난다. 이곳은 발길 닿는 곳, 눈길 닿는 곳마다 단풍이 지천이라서 그런지 단풍구경 간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영화처럼 방대하게 펼쳐진 자연을 보며 한국에서 자란 나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스모키 마운틴 가는 길도 예외가 아니다. 단풍들이 우리를 보자 되레 반색을 한다. 눈에 들어오는 스모키 마운틴은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이 공존하고 있다. 산 입구에는 눈이 부실정도로 고운 단풍이, 산중턱부터는 눈이 쌓여 있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산에는 벌거벗고 서 있는 나무, 미라처럼 누워있는 나무,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 등 각양각색의 나무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 정상(Clingman's Done) 아래는 가문비나무가 하늘과 송신하며 천연의 빛을 지상에 뿌려놓는다. 정상에서 애팔래치아 산맥을 바라보면 천연색 파도가 일렁인다. 이곳에서는 하늘이 아치형으로 보인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 하늘에 깃대를 세우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아름다운 대자연의 창조자는 누구며 주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200여년 전만해도 인디언들이 이곳을 활보하며 다녔다. 인디언들의 생활사가 궁금해 인근에 있는 체로키 인디언 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하늘과 소통하며 품어내는 자연의 숨결은 문명에 길들여진 나의 영혼을 흔들며 잠시 쉬어가게 한다. 길 저편에 인디언이 거주하고 있는 집들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인다. 보통 미국 집들과는 달리 나무로 엉성하게 지어져 있어 인디언들의 거주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바람결에 인디언들이 '우후후~' 하는 소리가 실려 온다. 아련한 소리를 따라 가다보니 오른쪽에는 상점이, 왼쪽에는 인디언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인디언이 지키고 있고 안은 그들의 역사와 삶의 흔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둘러보고 기대치에 못 미쳐 실망했다. 박물관 옆 인디언 수공예품 판매장에는 백인 여성 두 명이 판매하고 있다. 가격이 생각보다 좀 비싸다. 나는 인디언풍의 귀걸이 한 쌍을 샀다. 이렇게 돌아가기는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어 인디언들이 경영하는 상가로 갔다. 상점 앞에는 그들의 주식이었던 버펄로가 새겨진 카펫이 손님을 맞이한다. 가게 안에는 토산품인 조각품과 카펫, 도자기, 꿀, 차 등이 진열되어 있으나 상점 또한 이렇다고 할 매력을 느끼지 못해 인디언이 살던 폐가로 향했다.

단풍 숲 사이로 난 시내가 햇빛을 받아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인다. 주위는 풍요로운 자연으로 사람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다. 햇빛이 가득한 뜰과 사납지 않게 흐르고 있는 천, 오래된 나무들과 무성한 숲, 맑은 공기, 외로움이 들 정도로 한적한 곳, 말 그대로 청정지역이다. 넓은 들녘에 가축을 기르던 우리와 도살장, 곡식을 저장하던 저장고와 방앗간, 농기계를 보관하던 창고 그들이 거주하던 집이 산과 들을 지키고 있다. 100여 년 전에만 해도 이 집에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발을 디딜 당시 인디언의 인구는 아메리카 전체에 약 1300만 명이었다. 16세기 이후에 유럽인의 침입과 외부와의 투쟁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됐다. 현재 미국 정부가 인디언들에게 무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인디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인디언들이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들 80%가 실업자라고 한다. 연방법과 원주민 자치법의 갈등으로 일자리 창출이 힘들고, 그들 또한 의욕이 상실되어 있다. 한때 평원을 누비던 그들이 정복자들과 투쟁한 결과 그들의 역사, 전통, 종교가 매몰됐을 뿐만 아니라 토지 무상몰수와 강제이주를 당했기 때문이다. 1930년까지 투표권이 없었을 만큼 차별정책과 보이지 않는 사회적 제약으로 보호구역이란 주거제한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 그들은 알코올과 마약중독, 도박문제로 심각성을 보이고 있다. 인디언들이 거주하고 있는 보호구역만 마약과 도박이 미국 연방법에서 제외된 곳이라 이 구역은 마약과 도박이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0년 미국 정부는 초기 정부가 이들에게 행한 폭력, 탄압, 강제 이주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이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환경적으로 축복받은 미국에서 여행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허나 신이 창조한 이 세상을 무력이나 권력으로 지배한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이 강산도 무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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