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야 할 물의 원형적 상징
다시 찾아야 할 물의 원형적 상징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3.06.11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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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재의 세상엿보기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린다. 한 여름 같은 더위의 시작이다. 요즈음 아침에 눈을 뜨면 씨앗을 뿌려놓은 꽃밭에 물을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저녁으로 거르지 않고 물을 주었는데 꿈쩍도 않던 땅에서 일주일 만에 새움이 솟아난다. 땅이 마르지 않도록 정성들여 물을 준 때문이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물이 생명의 근원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물을 써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집은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아 지하수를 쓴다. 그런데 어느 날 지하수가 마른다면 마당의 잔디와 텃밭의 채소, 그리고 저 꽃들은 어떻게 될까 물이 없는 나의 삶은 어떻게 될까?

지구 표면은 70%정도가 물로 덮여 있다. 그 중에 97.5%는 바닷물이고 인간이 쓸 수 있는 민물은 2.5% 정도이다. 민물 중에서도 3분의 2는 남극과 북극의 빙하에 갇혀 있다. 결국 인류가 마시고 쓸 수 있는 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산업화와 도시화로 물 소비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 기간 동안에 세계 인구는 2배 늘었는데 물 소비는 6배가 늘었다. 또 기후변화가 가져온 지구의 사막화로 지구 곳곳에서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 전문가들에 의하면 전 세계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약 24억명이 물 부족 때문에 더러운 환경과 질병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며, 11억명은 일상적으로 마시는 물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은 매년 500만명이 물과 관련한 질병으로 사망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의 10배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이다. 또 2025년에는 인류의 60%이상이 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나라간 분쟁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2개국 이상을 걸쳐 흐르는 국제하천은 241개다. 이 강들이 50개국 영토를 지난다. 나일강 유역의 8개국과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있는 터키와 시리아, 매콩강을 둘러싼 아시아 국가들은 자주 물 분쟁을 벌인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물 부족을 해결하는 사람은 노벨과학상과 평화상을 동시에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전에도 물 부족은 지구촌의 문제였고, 지금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는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 때를 제외하고는 크게 물 걱정을 하지 않는 축복된 땅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물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 마치 마르지 않는 무한한 자원처럼 물을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물 부족국가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차츰 수질 오염이 심각해지고 무분별한 사용과 지하수의 개발로 물이 고갈되어 간다. 이렇게 소비중심으로 변해 버린 삶의 태도는 선조들이 생명력과 정화력이 있는 신앙으로 여겨왔던 물의 원형적 상징마저 잊게 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에게 물은 농사의 근원이 되는 생명의 원천이었고 신앙의 매개체였다. 그래서 집안 제사나 마을 동제를 지낼 때 먼저 하는 일은 목욕재계와 정화수 떠놓기이다. 목욕재계는 물의 정화력을 빌려 신과 교응할 수 있는 심신을 만드는 일로 여겨 정성을 다했다. 기도할 때 떠놓는 깨끗한 정화수는 물 자체가 지닌 맑음이 부정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물은 신성하고 소중한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지배하며 소비하는 물질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물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며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겸손과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 어떤 물과도 함께 섞이는 포용력, 어떤 모양의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 그리고 바위를 뚫어내는 인내와 끈기를 가르친다. 이렇듯 물은 오늘 우리만 쓰고 마는 소비재가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물려주어야할 소중한 자연자원이며 정신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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