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삶의 경건함을 깨우치다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삶의 경건함을 깨우치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6.11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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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김병기시인 시집 '오래된 밥상' 출간
'생명의 근원' 밥에 대한 시적 감상 그려내
"밥에 대한 경배 삶에 대한 숭엄한 예의"

한번 태양의 궤도를 벗어난
그대는 봄날의 다짐을 잊지 않고
불의 무게를 씨앗에 밀어넣었다

그래서 붉고 맑고 서늘한 빛을 쟁여놓은
작은 은행 한 알에는
태양의 비밀장부가 한 권씩 들어있다

밥 한 그릇 먹는다는 것이
우주의 배부름인 걸 모른다 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살아있는 것들은
아무리 뾰족한 인내를 가졌어도
상처 난 둥근 이마는 눈부시다
 
내 정수리에서 자란 나무에게서
햇빛 냄새가 난다

― 시 ‘불의 밥상’ 전문 -

청주에서 활동하는 김병기 시인이 시집 ‘오래된 밥상’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밥에 대한 단상으로 시인은 밥을 통해 시적 서정과 감성을 그려낸다. 또 ‘밥’과 ‘인간정신’을 하나로 보고 신자본주의 문명의 이기에 처한 인간정신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 본문은 모두 4부로 구성해 밥과 삶, 생명, 우주를 들려주고 있다.

허장무 시인은 시집 ‘오래된 밥상’에 대해 “지고한 ‘밥’의 가치를 섬기고 또 섬기면서 만만치 않은 세월, 등짐 진 두꺼비처럼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곡진한 수행의 등가물이다”며 “문명의 이기가 극한에 처한 이 상실과 폐색의 시대에 마땅히 회복되어야 할 진정한 인간정신을 위해, 그는 누항의 처처한 사람들에게 쌀 씻는 소리와 밥 짓는 냄새로 애오라지 시를 쓰고 시를 부른다”고 평했다.

이정록 시인은 “시를 읽다 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경건함과 무릎걸음을 깨우친다. 함박눈을 얹은 소나무가지처럼 고개 숙이게 된다. 밥에 대한 경배는 삶에 대한 숭엄한 예의이다. 밥상이 단출할수록 정신이 정갈하다. 삶이 곧 시려니, 땀으로 쓴 시에게서는 밥 냄새가 난다”고 평했다.

김병기 시인은 1997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꽃따기', '얼음두꺼비의 노래' 등을 펴냈다. 현재 형석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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