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프리카 아프리카
<16>… 아프리카 아프리카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3.04.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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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아프리카 여행기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아무리 계획된 여행이라도, 여행은 때로 용감하게 때론 무모하게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만나서 사귄다. 그리하여 어처구니 없음과 사귀면서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큰 기쁨을 만들기도 한다.

옷을 벗고 만나는 관계처럼 여행지에선 사회적 직책이나 신분을 떠나 사람 자체로 만나기 때문에 본성을 엿볼 수 있어서 기껍기 마련이다. 모르니까 철저히 위장할 수도 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 있겠는가. 아프리카의 이 여행은 거리낌 없는 시선과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지 못한 나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고, 매일이 새로운 힐링의 여행일지라도 결국엔 기다리고 있는 가정과 기다리고 있는 사회의 인맥 속으로 돌아가 닻을 내리게 될 것이란 믿음으로 더 행복한 나와 만난다.  

일행들은 모두가 여행의 고수들이다. 아프리카만 세 번 오는 사람도 있고, 대륙을 다 돌아보고 이제 아프리카만 집중적으로 돌아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은퇴 자금을 여행에 쓰고 있는 사람, 자신과 살아준 아내가 고마워 가고 싶은 곳 마음껏 다녀오란 선물로 아프리카로 온 사람, 10여년 유학생활 끝에 모처럼 여행으로 만난 가족, 모녀, 부녀 등등. 여행이야기만으로도 몇 밤을 새워도 모자랄 여행가 팀이다.

이들 중에는 젊은 사람 못지않은 70대의 노장 세분이 계신데, 고수답게 남다른 것은, 무거운 짐이나 무리한 워킹사파리에서도 젊은 사람에게 절대 뒤처지거나 한 치도 도움받길 싫어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즐긴다. 그리고 여행지의 느낌 때문인지 본국에선 버릇없고 예의 없는 청춘들만 보였는데, 유학생활과 갓 군대를 제대한 젊음 네명은 모범생을 뽑아 온 것처럼, 하나같이 예의 바르고 참하게 어른 먼저 챙기고 안내하고 배려하고 나름 즐기는 폼이 마냥 예쁘다. 더군다나 이들 젊음으로 여행이 더 없는 충전을 받고 있으니, 내가 고수들과 참기 힘든 일정을 씩씩히 견뎌내고 있으니 고마울 수밖에. 

로지 바오밥행성에서는 당연하게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워낙에 장대한 바오밥나무 앞에 서자, 어린나무일 적에 양에게 먹어버리게 해야 한다는 어린왕자의 말이 긍정이 간다. 나무가 커져서 작은 별을 쪼개버릴까 겁을 낼 정도라는 어린왕자의 바오밥이 무한정 자라는 이곳. 로지의 분위기가 남다른 만큼 일찍 숙소로 들어가기 아쉬운 일행들 몇몇이 거대한 나무사이로 빛의 산란이 신비한 로지를 산책한다.

하지만 여행의 고수들이란 자신의 신상을 시원하게 밝히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고, 남의 신상에 대하여 그다지 궁금한 사람도 없다. 나는 그 고수들 속에서 얼떨결에 불청객이 되어,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떠오르는 소원이나 덕담을 한마디씩 외쳐보자고, 흥에 겨워 나름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제안을 한다.

그들은 내가 까다로운 외형에 비하여 의외란 표정이지만, 그럭저럭 너그럽게 호응해 준다. 자기소개나 여행의 계기 같은 것을 유쾌하게 말하거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첫사랑이 떠오른단 얘기도 하고, 누구는 유치하다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경이로움을 그냥 잠으로 묻어버리기에 진정이 안 되는 나만 별이 무수히 쏟아지는 캄캄한 숙소 앞 가로등 앞에 앉아서 여행은 외로움을 즐기고픈 사람의 은둔지가 아닐까 생각하고. 여행은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는 기쁨을 안내하는 발걸음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외롭고 싶어도 외로울 수 없는 바쁜 일상을 벗어나 위대한 자연을 만나고 자연을 주관하는 신의 존재를 깨닫고, 여행이 신앙이 될 것처럼 여행에 매료되어 가고 있단 생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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