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한화 이글스를 사랑하는 이유
꼴찌, 한화 이글스를 사랑하는 이유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3.04.23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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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재의 세상엿보기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지난 4월 4일, 십여 년 만에 대전 한밭야구장을 찾았다. 그날 한화 이글스는 기아 타이거즈에게 4대 12로 크게 졌다. 초반은 잘 버티다가 투수난조와 수비실책 등으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시즌 개막 후 5연패였다. 그리고 8경기를 더 져서 13연패를 기록했다. 9개팀 중에서 꼴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너무나 달라진 경기장 풍경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열중-쉬어 자세로 뒷짐을 지고 제법 거만하게 배를 내밀고 무릎을 까닥이며 관중이 하나가 되어 외치는 노래 소리가 대전구장 하늘 높이 울려 퍼진다. 연패를 거듭하는데도 팬들은 행복하다고 외친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비난과 욕설을 쏟아내던 모습은 간곳없고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만이 운동장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진정으로 경기를 즐기고 응원하는 팀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드디어 신생팀 NC 다이너스를 상대로 첫 승, 2연승, 3연승을 올리던 날, 대전 한밭야구장은 함성과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선수 개개인의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고, “김태균 홈런”을 외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홈런을 때려내는 선수가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3연승을 한 날, 벅찬 마음으로 돌아오다가 문득 ‘내가 왜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한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가족 중에도 한화계열사에 다니거나 관련이 있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한화가 운영하는 백화점이나 콘도 등을 자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한화그룹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전혀 없다. 그런데 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화이글스가 우리지역, 충청권을 연고로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럼 내가 지역 연고팀을 응원하고 사랑하니까 결국 우리 지역을 사랑한다는 말인가?

모래알처럼 개인화된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한군데로 모으는데 스포츠만한 것도 없다. 한때는 프로 스포츠가 군사정권의 고착화를 위한 우민화정책의 도구라고 비판받은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시민들의 여가 활용을 위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지자체마다 스포츠팀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스포츠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대전시는 지난해 130억원을 들여 한밭야구장을 새롭게 단장했다. 1만3000여석의 관람석과 편의시설 등이 손색없이 갖추어져 한화이글스 팬들이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한 시설로 탈바꿈했다.

청주의 야구 열기는 뜨겁다. 청주에서 경기가 열리면 평일에도 전석 매진 사태가 일어난다. 대전보다 더 뜨거운 열기다. 그래서 한때 한화이글스 구단관계자는 입장수입을 위해서 청주경기를 늘리고 싶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기도 했었다. 그런데 2013년 한화이글스 청주경기는 5번뿐이다. 해마다 8경기에서 많게는 12경기까지 청주경기가 있었는데 크게 줄어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청주야구장의 열악함 때문이다. 관람시설과 편의시설의 불편함 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부상 위험 때문에 기피하는 구장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자체의 무관심일 것이다. 청주시민들을 위해 한 경기라도 더 유치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제 야구장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체육시설이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여가를 활용하고 즐기는 문화시설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홈구장에서의 야구경기가 기다려진다. 야구장에서 펼쳐지는 감동과 반전의 드라마를 즐기고 싶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것처럼 승패를 떠나 마음껏 응원하고, 그 응원을 통해 모르는 우리의 이웃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 “최ㆍ강ㆍ한ㆍ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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