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의 일그러진 초상(肖像)
형제들의 일그러진 초상(肖像)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3.04.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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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한 때 충북지역을 대표하던 청주방적 창업주 아들들이 선친의 시중은행 대여금고에 보관돼 있던 1000억원대 재산을 놓고 목하 심각한 다툼을 벌인다고 한다. 잘난 집안의 형제간 재산다툼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지역연고의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어쨌든 흥미롭다.

예부터 명리학에서는 형제간 유산다툼을 군비쟁재(群比爭財)라 하여 금기시하거나 폄훼했다. 굳이 해석한다면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형제들(群比)이 재물을 두고 서로 다툰다는 뜻으로, 예나 지금이나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라 하더라도 돈과 재산의 이해관계에선 늘 부딪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에만도 전국적인 관심을 끈 형제간 재산다툼은 여러 건이다. 세계적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우습게 한 삼성의 이맹희-이건희를 비롯해 금호그룹의 박삼구-박찬구, 통일교재단의 문현진-문국진 형제간의 재산분쟁이 우선 꼽힌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그 정도의 재산가들이 꼭 그런 식으로 이전투구를 벌일 필요가 있을까?를 되뇌이게 되지만 ‘돈’ 앞에선 누구도 똑같다는 현실만을 그저 재삼 확인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형제간의 갈등과 다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오히려 삶의 과정에 있어 순기능으로 치부하려 했다. 비록 똑같은 부모로부터 피를 나눈 형제라 하더라도 그 성격이나 지능, 취미, 하다 못해 좋아하는 음식조차 다른 마당에 어찌 한 줄로 세울 수가 있겠느냐는 자각을 일찌감치 터득한 것이다. 이를 대변하는 것이 ‘형제는 싸우면서 큰다’라는 속설이다.

아닌게 아니라 어려서의 형제간 갈등은 사회화과정의 한 부분이었다. 때론 다투고 또 화해하면서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익히고 더 나아가 상호 존중과 포용의 미덕을 배운 것이다. 우리나라가 급속한 핵가족화를 거치면서 가장 우려됐던 것이 바로 이러한 가정 내 자발적 교육의 상실이었다. 자녀 혼자 부모 사랑을 독차지하며 늘 잘 준비된 소왕국에서만 사는 자녀들이라면 그 사회성이 어떤지는 안 보고도 눈에 선하다.

대개 형제간의 다툼은 집안의 장자로 상징되는 맏아들과 그 아래 동생들의 정서적 괴리감에서 출발한다. 맏아들이 우선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여전한 현실에서 아랫 동생들의 박탈감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간혹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형제간 재산다툼도 거의 이같은 구도(?)에서 빚어지고 있다.

하지만 큰 아들이라고 해서 무슨 용빼는 권리를 독점적으로 누릴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성리학과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했던 조선시대에도 맏아들인 원자(元子)가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를 계승한 경우는 전체 27명의 왕 가운데 고작 7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왕권이 불안정하거나 서로 정치적 입장이 다르기라도 하면 형제간은 물론이고 아버지인 왕과 세자 사이조차 정적관계로 돌변해 심한 경우 칼부림까지 벌어졌다. 결국 제 아무리 돈독한 형제간이라도 이를 끝까지 지켜 가기란 마지막까지 상호존중과 배려, 그리고 자기희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현실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애가 철철 넘치는 형제조차도 그 자식들이 성장해서 대학가고 결혼할 때 쯤이면 자연스럽게 격조해질 수 밖에 없다. 형제 개개인이 각자 독립적 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럴 때 형이라고 해서 무엇을 주장하고 동생이라고 해서 무엇을 바란다면 관계는 곧바로 소원해진다.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엔 형제사이는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작은 말 실수에도 형제간은 큰 상처를 입는다. 오죽하면 ‘형제라는 이름의 타인’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이번과 같은 형제간 재산다툼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또 있다. 부모의 유산 분배는 본인이 살아 있을 때 확실하게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자식들에게는 결코 많은 재산을 물려주지 말라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사례를 봐도 안 그러면 십중팔구 집안이 풍비박산났다. 재산보다는 가르치거나 사회를 헤쳐나가는 인성과 자질을 키워주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면 형제들은 절대로 재산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저들의 재산싸움을 지켜봐야 하는 서민들의 돈없는 설움은 어디에서 씻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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