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나무(1)
아카시아나무(1)
  • 김홍은 <산림학 박사>
  • 승인 2013.04.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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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은의 나무이야기
김홍은 <산림학 박사>

봄이 돋아나던 사월도 벚꽃잎처럼 지고 있다. 이제 곧 신록의 계절 오월이다. 오월이 오면 아카시아꽃 향기가 공연히 마음을 설레게 한다. 송아리 져 피어난 아까시아꽃에는 벌, 나비가 날아들어 꿀을 따느라 정신이 없다.

아마도 이 꽃만큼 꿀샘에서 꿀이 많이 나오고, 달콤하고 짙은 향기를 피우는 경우도 드물 듯 싶다. 바람결에 밀려오는 꽃향기를 맡으면 어릴 때 친구들이 생각난다. 어디 이런 마음뿐이던가. 고향산천이 더없이 그리워진다.

아카시아나무는 마을에서 가까운 시냇가의 언덕이나 산기슭에 많이도 심겨져 있었다. 푸른빛이 산천을 물들이면 하얗게 피어난 아카시아꽃을 따먹으며 산 고개를 넘어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 때가 그립다.

아카시아나무는 가시가 많아서 나무에 올라갈 수가 없다.

갈고리를 만들어 길게 늘어진 줄기를 조심스럽게 휘면, 한사람은 가까스로 까치발을 떼어 달 듯 말 듯 한, 잎을 잡아 끌어당긴다. 또 한사람은 곁에 서 있다가 꽃을 꺾어내면 환호성이 일었다.

이런 꽃을 서로 정답게 마주앉아 똑같이 나누었다. 꽃자루를 거꾸로 들고 한 쪽 손으로 조르륵 훑어내어 한입에 넣었다. 향긋한 입안은 씹으면 약간 비릿하면서도 달착지근한 향기로 가득 채워졌다. 지금도 생각하면 초등학교 오가던 길의 아련한 추억들이 그립다.

어느 집에서는 꽃을 따서 맷방석을 펴놓고 말렸다가 쌀가루에 버무려 아카시아 꽃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꽃송이에 가루를 묻혀 튀김을 하여 먹기도 했다. 보릿고개의 양식을 아껴먹는 간식거리가 되었다. 가끔은 나박김치에 꽃을 넣어서 먹을 때는 향긋함으로 새로운 맛이었다. 지금은 공해로 꽃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내가 다니던 학교교정에는 아카시아나무가 참 많았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수업을 하는 동안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면, 어느새 마음이 들뜨기도 하였다. 이때가 되면 더러는 황금 같던 꾀꼬리가 울었던 생각이 난다. 밤이면 꽃향기는 줄어들었고, 대신 소쩍새가 슬피 울면 봄밤이 깊어가는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그리움이 밀려오고는 하였다.

아카시아나무는 가시가 있어서 찔릴까 무서워 마음대로 접근할 수는 없었던 어린 시절의 회상을 가져다주는 나무로 잊혀지지가 않는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가 언덕에서 아카시아나무 그늘에 누워 책도 읽고, 친구들과 소를 뜯기러 나와서 심심하면 잎을 따내는 놀이도 하였다. 이럴 때마다 아카시아나무의 긴 잎자루에 길쭉하고 동그스름한 작은 잎들이 나란히 열다섯 장이 마주 달려, 우리들의 놀이 감이 되어주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한 잎, 한 잎씩 따내거나, 어느 때는 ‘딸동 말동 딸동 말동’으로 딸동이 되면 따내기도 하였다. 이때 지는 사람은 토끼풀을 베어주는 일이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갈 때면 아카시아나무 그늘도 점점 사라져갔다. 평화롭고 아늑했던 어린 시절의 고향은 잊을 수가 없다.

아카시아나무는 우리나라의 향토수종이 아니다.

자료에 의하면 원래 아메리카에서 자라던 것을 신대륙 발견이후 1600년대 프랑스 약초 학자인 Jean Robin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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