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
노루귀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3.2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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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겨울이 머물다간 담 밑에 분홍색 노루귀가 피었다. 잎도 없이 가냘픈 줄기를 올려 꽃잎을 활짝 펴서 봄을 알린다. 옆에 핀 섬노루귀와 흰색 노루귀도 정답게 봄 인사를 한다. 나와 눈 맞춤을 하며 찬 기운이 감도는 작은 뜰에 화사한 봄 소식을 전한다. 늦은 가을날 잎이 말라가며 도톰한 꽃봉오리를 만들고 봄을 기다리더니 때를 찾아 세상구경을 살며시 나왔다. 그 연한 모습이 수줍은 봄 처녀 같다.

40년 전 새내기 교사시절 3월 중순쯤이었다. 학교 뒷동산 넘어 옹달샘이 있는 곳으로 봄맞이하러 갔다. 여름이면 가끔 물을 마시러 찾던 곳이다. 물맛이 좋아 고향에 가지 않는 날에 같이 근무하는 선배와 그곳에 가곤했다. 그날도 그 옹달샘을 보고 싶어 길을 나서던 참이었다.

마른 잔디가 앙상하게 하늘을 향해 쓸쓸히 자리 잡은 그 오솔길을 걷고 있을 때에 눈 안으로 들어오는 생명체가 보였다. 몸을 낮추어 자세히 보니 작은 꽃들이 앙증스럽게 마른 들풀 사이에 다정하게 모여 피어 있었다. 봄을 속삭이는 듯했다. 처음 보는 꽃이었다. 흰색, 분홍색, 연보라색 설레는 마음으로 몇 송이를 조심스럽게 한 송이씩 떼어 가지고 산에서 내려왔다. 너무 가냘퍼 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내려와 책꽂이에 정리된 책을 한 권 뽑아 책장을 열어 그 속에 꽃 누름을 하였다. 그때는 그 이름이 알 수 없어 너무나 궁금했다. 그렇게 호기심 속에 궁금했던 꽃을 보러 그곳에 4년간 근무하며 봄이면 옹달샘 가는 길을 몇 번 더 찾아갔다. 그때마다 그 꽃은 나를 반겨주고 그 이듬해 초임지를 뒤로한 채 도회지 학교로 전근을 간 후 오랫동안 내 곁을 떠나 있었다.

초등학교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며 앨범 정리를 하게 되었다. 그 꽃 이름도 모르고 궁금했던 마음도 뒤로 한 채 앨범을 펼쳤다. 그리고 산마을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옆에 꽃 누름한 노루귀를 끼워 넣었다. 흑백 사진이었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싱그러운 추억들이 눈 안으로 달려든다. 아이들보다 나이만 조금 더 많았지 내가 그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었나. 담임인 나도 철이 덜 들었으니 똑같은 아이들이었다.

노루귀는 복수초와 함께 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꽃이다. 어릴 때 돋는 잎의 모양이 노루의 귀처럼 동그랗게 말리고 털이 보송보송하여 노루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한다. 지금은 야생화가 사람들 주변에 보편화되어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 분씩 구입해서 기른다.

10여 년 전 야생화 책을 구입하여 보면서 초임지 산마을에서 보았던 꽃이 노루귀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잔털이 줄기와 잎에 보송보송 나있는 것이 노루의 귀에 난 보드라운 털 같다. 순한 노루의 눈처럼 고왔던 그때 아이들도 이젠 50 가까이 되어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있는 노루귀의 모습은 아직도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고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담 밑에 소박하게 피어 있는 몇 송이의 노루귀,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그 시절을 가득 담은 채 나와 함께 함께 희망찬 새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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