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패럴림픽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2.09.09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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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2012런던패럴림픽(paralympic·장애인올림픽)에서 충북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각종 경제지표상의 전국 3%대의 한계를 벗지 못하는 충북에 이들이 모처럼 50%대를 육박하는 시원함을 던져줬다. 한국선수단이 획득한 금메달의 절반 가까이를 겨우 6명이 출전한 충북 선수들이 따낸 것이다.

자랑스럽지 않은가.

한국이 런던올림픽에서 종합 5위(금13·은8·동7)의 성적을 거두는 과정에서 경기마다 국민들의 시선을 모았고 환호와 응원을 이끈 비장애인 중심의 올림픽에 비해 화려함도 없고 국민적 관심도 떨어졌지만 패럴림픽의 성과는 그에 못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의 각본없는 드라마라의 주인공은 이들이 아닌가 싶다.

패럴림픽은 장애인의 재활치료에 스포츠정신을 도입한 것이 모태가 됐다. 척수장애 부상을 잘못 다뤘던 치료방법 때문에 죽어가던 환자들을 움직이고, 운동하게 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독일계 유대인으로 영국으로 망명한 루드비히 구트만 박사가 척수장애 환자들에게 운동을 하게 만들고, 여기에 경쟁의식, 즉 경기정신을 접목시킨 것이 장애인올림픽을 탄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루드비히 구트만 박사는 자신의 고향 탄광에서 척수 부상 환자들이 잘못된 치료 때문에 숨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척수 장애 환자들은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 피부에 욕창이 생기거나 소변 유도관 때문에에 방광염이나 내장 염증으로 숨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척수 부상 환자들이 조만간 숨질 것으로 예단하고 진정제를 놓는 것 외에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다. 욕창이 생겨도 척수 장애인들이 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료진들이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구트만 박사가 1944년 영국 스트로크 맨드빌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도 상황은 그랬다.

환자들은 몇 달씩 침대에 누워 있기가 일쑤였고, 살이 썩거나 오줌 냄새가 나는 환자들이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의료진들이 그들을 외면했다.

구트만은 간호사들에게 환자들을 밤에도 2시간마다 돌아 눕히도록 하고, 환자 자신들에게도 움직이고, 상체 근육을 단련시키거나 운동을 하게 했다.

처음에 간호사들은 물론, 환자들로부터도 반발과 원성을 샀다. 이때 구트만 박사는 휠체어를 탄 척수 장애 환자들이 병원 마당에서 지팡이를 거꾸로 들고 고무원반 치기를 하는 것을 보고 환자들에게 경기 정신이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구트만 박사는 환자들에게 활쏘기, 창던지기 경기를 벌이도록 했다. 그런 결과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이것이 장애인올림픽으로 이어진 것이다.

런던이 1948년 2차대전 후 첫 올림픽 경기가 열렸을 때 이에 맞춰 스트로크 맨드빌 병원 마당에서도 첫 장애인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가 지난 1952년에 네덜란드 양궁팀이 참가함으로써 국제대회로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장애인올림픽이 된것이다.

올림픽은 쿠베르탱이 만들었다.

그는 '우정과 연대, 페어플레이 정신에 따라 어떤 차별도 없는 스포츠로 세계 젊은이들을 가르쳐 더 나은 세계를 만든다'라는 올림픽 정신을 주창했다.

하지만 비장애인 중심의 2012런던올림픽은 '져주기게임', '오심사건'등으로 얼룩졌다. 올림픽 정신이 실종된 대회였다.

오히려 장애인올림픽인 이번 런던패럴림픽이 쿠베르탱의 '우정과 연대, 페어플레이 정신'을 철저하게 지킨 올림픽이었다는 생각이다.

장애를 딛고 일어서면서 너무도 힘든 역경을 헤쳤기에 상대 선수를 존중할 수 있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몸에 밴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리 충북의 선수들이 더욱 자랑스럽다.

메달리스트 박세균·임우근·민병언·조원상과 함께 아쉽게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김경헌·김명수의 대견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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