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 정겹다
농촌이 정겹다
  • 김영아 <괴산군 칠성면사무소>
  • 승인 2012.09.0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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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아 <괴산군 칠성면사무소>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고 결혼과 직장생활도 모두 도시에서 했다.

수도권인 경기도 시흥시에서 16년간 지낸 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도시를 훌쩍 떠나 기차역도 없는 시골로 왔다.

공직자로 시골에서 부임 받은 곳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사무소다.

지난 7월2일 칠성면사무소 직원이 되면서 본격적인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괴산군을 전국에 알리고 싶은 욕망이 점차 커졌고 홍보 역할을 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낀다.

아침에 눈을 뜨며 창밖을 보면 웅장함을 드러낸 산봉우리 위로 산수화를 옮긴 듯한 하늘아래 구름이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일상을 맞게 한다.

편도 1차선인 시골도로 양쪽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깔려있고, 사람냄새를 물씬 풍기는 모습을 연출한다.

군이 권장하는 공공기관, 상가 등엔 태극기가 펄럭이고 칠성면사무소 건너편엔 유일한 택시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처음엔 한대뿐인 택시를 위해 사무실까지 냈다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이젠 그 뜻을 알게됐다.

한동안 성황이었다던 칠성 재래시장에선 옛모습을 간직한 음식점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찻집(일명 다방)들도 추억을 담고 있다. 지금도 관내 이장회의나 주민들 모임 후엔 서너명씩 짝을 지어 다방으로 들어가고 마담이 끓여내는 커피와 녹차를 마시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도심 생활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진풍경이다. 그만큼 농촌생활이 정겹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때론 여름 한낮 뙤약볕에 잔뜩 얼굴을 찌푸린 어르신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도 흥미를 더해준다. 노래책 할머니로 불리는 어르신도 곧잘 면사무소를 방문한다. 노래책 할머니와 마주하게 된 것은 이곳에 근무한지 2주쯤이다. 민원을 처리하는 중에 할머니 한분이 수줍게 주위를 살피며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다.

'책 한권 얻어갈 수 있냐'고 했다. 흔쾌히 진열된 책 중에 보실만한 걸로 가져가시라고 하자, 할머니는 소녀같은 표정으로 진열된 책을 고르셨다.

책 한권을 품에 안은 할머니는 민원업무가 끝날때까지 기다렸다. 이후 책 제목을 확인한 순간 난 그만 웃음을 토해낼 뻔했다. '알면 알수록 더욱 안전합니다'라는 행정관련 안내 책이었다.

할머니는 "남들이 보면 어쩌냐" 며 봉투를 달라고 했고 큰 봉투에 책을 넣어드리니 기쁘게 돌아서며 "혹시 노래책은 없냐"고 반문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론 일주일에 한번 꼴로 꼭 노래책은 없냐고 되물으며 책 한권을 골라 가신다.

정말 읽기는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 사는 정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즐기던 중년 부부가 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을 찾고 관내 주민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면사무소에 들어와 사람사는 얘기를 풀어놓기 일쑤다. 인심좋고 살기좋은 값싼 주택을 소개해 달라는 한 노부부의 자식을 원망하는 얘기엔 가슴 찡한 눈물을 남모르게 흘리며 마음을 아파하기도 했다.

심지어 길을 묻는 관광객, 맛집 소개, 가볼만한 곳 추천은 물론이고 팩스 보내기와 복사 등을 대행해 주는 역할도 한다. 주민들이 두고 간 농산물 보관에서 배달까지.. 이렇듯 면사무소는 공동화장실이고 부동산이고 문방구이며 물품보관 창고역할도 하는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이곳에서 난 공무원이기보다는 화장실 관리인이고, 복덕방쟁이에 문방구 주인도 되고 창고지기, 배달꾼 역할도 한다. 이처럼 농촌의 면사무소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며 지역 소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시골로 온걸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잘 왔다는 생각 뿐이다. 사람냄새, 농촌의 정겨움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공직자로 생활하며 행복한 조연으로 날마다 새롭게 찾아드는 주연들을 만나며 봉사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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