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제수비용
못 믿을 제수비용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9.0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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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근 <칼럼니스트>
오창근 <칼럼니스트>

주말에 일이 있어 만리포를 다녀왔다. 운전하면서 길옆에 늘어선 과수 농가 바라보기가 민망하여 몇 번 고개를 돌렸다.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봉지에 쌓인 채 떨어진 사과와 배가 바닥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고 볕만 좋으면 상품 값어치를 할 수 있는 과일을 주워 모아 한쪽 구석에 무더기로 쌓는 농부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두려웠다. 길가에 차를 대고 낙과라도 팔아주자며 과일을 고르는데 옆에 있는 손님은 그래도 과일값이 비싸다고 흥정 끝에 값을 깎는다.

수출이 감소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어두운 경제지표와 전망 속에 다가오는 추석을 걱정으로 맞는 이도 많다.

그런데 뉴스를 보다 보니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올 추석 차례상 비용이 지난해와 비슷한 것으로 전망하는 보도가 나온다.

그 이유로는 낙과 피해가 심했어도 추석이 지난해 보다 보름 이상 늦고 작황도 좋아 과일 가격이 저렴할 것으로 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올 추석 차례상 차리는데 드는 비용이 19만 5천원 정도 될 것이라 전망을 내놓았다.

식료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돼 장바구니 들고 시장가기 겁난다는 주부들이 20만 원만 가지면 차례상을 차릴 수 있다는 뉴스를 보며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례상 비용의 산출기준을 보면 본격적인 제수용품 구매가 시작되는 추석 한 주 전에 주요 제수용품 28개 품목에 대해 4인 가족 기준 구매 비용을 예측해서 내놓는 결과라고 한다. 이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대형마트 상품기획자의 전망을 비롯해 재래시장, 한국물가정보, 농수산물유통공사 등 각 기관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차례상 비용을 제시하면 신문과 방송은 앞다투어 보도하고 기정사실화한다.

그러나 대다수 주부는 코웃음 치며 동의하지 않는다. '그 정도 비용으로 차례상을 차리면 무슨 걱정을 하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와는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남의 제사상에 밤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는 말처럼 지역마다 차례상에 올리는 생선의 가짓수가 다르고, 음식의 종류도 다르다. 그러므로 일률적으로 적용해 발표하는 통계수치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많다.

통계자료에 나오는 4인 기준으로 한다는 것부터가 신뢰성을 잃는다.

현실적으로 명절에 4인만 모이는 가족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 외에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최소한 명절을 쇠기 위해 지불하는 돈은 50~60만 원이 넘는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제사상에는 최상품의 과일을 올리고, 좋은 재료를 이용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제상에 올리는 우리네 정서를 안다면 19만 5천원이라는 통계수치는 현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동향'도 마찬가지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2년 만에 최저치인 1.2%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2005년도 이후 최저치다. 전국 16개 시·도시의 차량 휘발유값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 운전의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정부의 발표를 신뢰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우려스럽다. 물론 태풍으로 인한 과일값 급등과 양식장 피해로 어류 값 상승 부분이 9월 물가지표에 반영된다고 해도 좀처럼 신뢰하기 어려운 통계수치다.

국민은 삶이 팍팍하다고 난리인데 숫자놀음에 잠시나마 안위를 얻으라는 정부의 배려라면 모를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형식적인 통계발표는 추석을 앞두고 '명절 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부들의 화만 돋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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