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식 리더십
홍명보식 리더십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8.06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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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독일의 프로 축구팀 '바이에른 뮌헨'의 명예회장인 프란츠 베켄바워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축구인으로 꼽힌다. 약관 스무살에 프로에 데뷔했고 이듬해 국가대표에 선발됐으니 출발부터 화려했다.

그는 수비수다. 그가 활동하던 때는 펠레를 비롯해 보비 찰톤, 요한 크루이프 등 전설적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던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팬들의 주목을 받지못하는 수비수로 이들과 어깨를 견준 선수는 베켄바워가 유일하다. 그는 국가대표로 1974년 월드컵에 출전해 우승했다.

프로에서 은퇴하자마자 바로 다음해 국가대표 감독에 발탁됐다. 그의 감독 시절 독일(서독)은 국제경기에서 53승 13패의 경이적 전적을 기록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에 우승컵을 바치며 선수와 감독으로 각각 월드컵을 거머쥔 유일한 축구인이 됐다. FIFA 부회장으로 활동하던 2006년에는 독일에 월드컵을 유치하며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는 '리베로(libero)'라는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어 냈다. '공격에 참가하는 수비수'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창조했다. 리베로는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상황에 따라 공수를 넘나들며 경기를 조율하는 선수라는 의미다.

그는 중앙 수비수가 필요에 따라 깊숙이 전진해 패스나 중거리 슈팅으로 공격을 지원하는 파격의 시스템을 창조함으로써 단순한 수비수의 역할에서 탈출했고, 자신만의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리베로의 창시자는 1966년 월드컵에서 4골을 기록했다. 수비수가 월드컵에서 4골을 넣은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팬과 언론은 그를 황제(카이저)라고 불렀다.

경기 전반을 통찰하며 수비와 공격을 조율하고 팀을 지휘하는 모습에서 황제의 리더십이 우러났을 것이다. 그래서 그라운드 안의 감독으로도 불렸다. 그가 프로에서 은퇴하자마자 지도자 수업도 없이 바로 대표팀 감독을 맡은 것도 선수 시절 이미 경기를 개괄하는 안목과 리더십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축구가 영국을 꺾고 올림픽 4강에 오르면서 사령탑인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홍 감독은 한국의 베켄바워로 불린다. 선수시절의 화려한 성적표도 닮은꼴이지만 무엇보다 '영원한 리베로'로 불린 그는 베켄바워의 충실한 계승자였기 때문이다. 홍명보는 이번에 사상 첫 올림픽 4강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음으로써 감독으로서도 베켄바워의 빛나는 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올림픽 대표팀의 한 선수는 홍 감독에 대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준다"고 평가했다. 하긴 선수들의 가슴이 자신감과 의지로 채워져 마구 뛰지 않았다면 한수 위의 영국을, 그것도 적지에서 만나 주눅들지 않고 대등한 경기를 펼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수들에게 했다는 "내 가슴 안에는 칼이 있다"는 그의 말은 그가 선수들의 가슴을 어떻게 뛰게 했는지 짐작케 한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칼이 아니다. 너희들이 다칠 것 같을 때 나를 찌르고 내가 먼저 죽기 위해서다. 대신 너희들은 팀을 위해 죽어라. 난 너희를 위해 죽겠다." 너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내 목숨까지 바칠테니 너희들은 경기에 목숨을 걸라는 당부는 그의 리더십이 소통과 신뢰에 기반했음을 보여준다.

축구협회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직후 허정무 감독이 연임을 고사하자 새 사령탑으로 당시 올림픽팀을 맡던 홍 감독을 꼽았다. 그러나 그는 축구협회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감독직을 거절했다. '런던올림픽을 함께 가겠다고 선수들과 약속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끝까지 함께 가자는 말을 행동으로 실천한 그에게 선수들이 무한신뢰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홍명보는 이번 영국전에서 부진했던 지동원을 선발 기용해 첫골을 뽑아내고, 수문장 이범영을 과감하게 교체 투입하는 등 빼어난 지략을 과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의 소통과 믿음의 리더십이 개인적으로는 영국 선수에 뒤지는 우리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게 한 1차적 승인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홍 감독의 리더십은 스포츠를 넘어 불통과 불신으로 가득찬 우리 사회 전반에 명료한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 정치계가 홍명보 감독을 통해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탐구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할 지도자가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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