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정치인의 함수관계
시인과 정치인의 함수관계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07.11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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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취재1팀(부장)

19대 국회가 개원되면서 뜬금없이 문학작품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시인 도종환씨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그동안 교과서에 실린 도 시인의 시를 삭제하라는 권고사항 공문을 출판사 교과서 업체에 보낸 게 화근이 되었다. 이유인즉, 특정 정치인의 홍보로 사용될 소지를 있다는 내부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삭제 권고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을 시작으로 문학과 정치를 계량하는 담론이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정치인으로 나선 만큼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미 문학적 평가를 받은 작품에 대해 너무 과도한 정치적 해석이 들어갔다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문학작품도 교과서에서 삭제하라고 반발했고, 충북작가회의도 10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교육과학기술부는 도종환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토록 권고한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문단에선 정치적 해석이 아니라, 문학작품으로 평가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이 잇따랐다.

이 처럼 논란이 일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해석해달라는 질의를 보냈고, 10일 공식적으로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해석으로 이번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정치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닫혀있는 공간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파문의 책임소재는 차치하고라도, 시인과 정치인이라는 각기 다른 두 지점에 서게 된 도종환 시인은 이번 파문으로 대한민국 국회 사상 새로운 기록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도종환 시인이 19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나설 때 지역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정치라는 탁한 세상을 시인이 어떻게 뚫고 나갈지 걱정이 앞섰던 게 지역 여론이었다. 이 우려를 뒤집어 보면 올곧은 시인으로 남길 바라는 지역민들이 많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 정치라는 헤게모니가 시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시인을 아끼는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그만큼 불신으로 가득한 정치계에 시인은 국회에 입문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정치적 행보가 아닌, 시인의 문학작품이 정치라는 울타리에 걸려 국회의원으로서 첫 단상에 올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문학과 동떨어져 보이는 정치는 어떤 험수관계가 있을까.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정치인은 대부분 학자나 문인 출신이었고, 남보다 더 많은 글을 읽고 쓰면서 깊은 혜안을 가졌다고 믿었던 문인들이 조선시대 말까지 정계의 주축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해체되었다. 독립투사로 기억되는 문인들도 있지만, 나라를 잃은 문학인들 대부분은 억압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문학을 일본권력의 하수로 전락시킨 탓이다. 권력에 기대 영화를 누린 친일파 문인들에게 문학적 성과만을 잣대로 삼지 않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하고 있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만들기에 앞장 선 몇몇 문인들도 있었다. 그 탓에 국민들은 문인의 정치입문에 아직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문학적, 정치적 풍토 속에서 도종환 시인의 정치입문은 새로운 도전이다. 시인의 시와 산문 등 작품이 교과서에서 삭제될 뻔한 파문은 문인과 정치인으로의 경계를 보여준 하나의 사건임에 분명하다. 이 논란을 뒤로 하고 지혜와 철학을 겸비한 조선 정치문인의 소신있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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